-강OO < OO 교회>-
회사 생활 30년차, 직장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큰 은혜가 많았다. 카이로 지점장으로 보내셔서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 교회 1대 목사님의 고향 가까운 토론토 지점장으로 보내셔서 구한말 우리 땅에 와서 생명 바쳐 복음을 전한 내한 캐나다 선교사들에 대해 알게 하시고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를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다. 내한 캐나다 선교사 유적지 탐방을 포함 여행 코스를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서 내가 받은 감동을 나누게 하는 일을 진행시키셨고, 여러 교회를 다니며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캐나다 선교사’ 강의를 하게 하셨다. 귀국하여 2년 동안 50여회나 다녔다. 이 무슨 은혜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동북아 선교사로 쓸쓸이 떠나시는 노하덕 목사님을 토론토 공항에서 배웅하게 하시어 그 분과 나를 동시에 감동케 하셨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사역하던 그 땅의 아이들을 보살피러 그 분이 들어갈 때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안전이 걱정되었다. 하나님의 그 분이 5개월의 사역을 마치고 안전하게 마치고 돌아오는 날까지 나의 귀국 발령을 늦추시고는 가을 단풍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10월 말에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신 그 선교사님을 공항에서 부둥켜안는 감격을 누리게 하셨다. 그 이듬해 가을에 동부캐나다 비전트립 상품으로 첫 팀이 감동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간 후 주일 아침에 하루 남아서 뒷정리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 현지 여행사 사장이 그 비전트립팀 행사로 인한 수익금의 십일조를 노하덕 선교사님의 선교 후원비로 드리고 싶다하시며 공항에 가지고 나왔는데, 계산을 잘 못하여 십에 이조를 들고 나왔다. 이것 또한 은혜고 축복이었다. 공항 사무실에서 노하덕 선교사님을 모시고 그 첫 열매를 드리는 예배를 드렸다. 마치 청교도들이 첫 추수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같은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귀국하여 캐나다 선교사 강의를 통해 들어오는 사례비 전부(평균 20만원 X 50회 = 1,000만원)를 캐나다 선교사들이 사역하던 그 땅의 아이들을 위한 사역비로 드리는 은혜를 누렸다. 올해 초, 대구-인천 내항기 운항을 실현시키는 큰일을 일구어 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도우심 덕분이었다. 임원 승진 발령 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나는 이 일을 도우신 하나님께서 임원 승진의 축복을 주시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임픽에 들어선 나로서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 나는 마음에 힘을 잃었다. 임원 승진을 하고 빛이 나야 캐나다 선교사를 알리는 강의도 더 힘있게 진행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왜 허락하지 않으실까? 내 마음 속에 캐나다 선교사 강의를 하러 다닐 의욕이 줄어들고 맥이 빠졌다. 그러더니 조직 개편이 개편되어 지점장 타이틀이 없어지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캐나다 선교사 알리는 일을 계속 하려면 서울여객 지점에 판매원으로 가서 종교담당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뜻을 인사담당에게 알렸다. 그러나 회사 내 조직 및 인력 여건은 내 뜻을 수용할 상황이 아니었다. 인천 공항으로 발령이 날 가능성이 컸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종교담당이 되어 캐나다 선교사 알리는 일을 계속하게 해 달라고. 그러던 중에 손산문 목사님이 인도하는 중국 심양/연길 기독교 역사 탐방 여행코스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심양은 가 본적이 있어서 연길에 합류하기로 했다. 연길 여행을 마치고 연길-심양 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데 나는 이 팀과 따로 예매했기 때문에 좌석이 다른 칸으로 떨어져 배정되었을 것이 뻔했다. 불안했다. 따로 앉아서 가다가 졸다가 심양 내릴 때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열차를 타고 보니 내 자리는 그 팀의 바로 옆에 나란히 붙은 자리였다. 놀라왔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네 자리는 내가 만든다. 염려하지 말라’. 아하! 하나님께서 내 자리를 만드시는구나. 종교담당 자리도 만들어주시겠구나. 마침내 일주일 뒤에 나는 종교담당으로 발령이 났다. 서울에 올라와서 GPTI 출신 방선오 장로님과 몇 번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 GPTI등록하지?, 송보영 상무도 거기 마쳤어.’ 권유이면서 도전이었다. 왜 송보영 ‘상무’를 언급하지? ‘너도 GPTI 마쳐, 그러면 하나님께서 상무시켜 주실거야’ 이런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교회에서 다문화선교팀장을 맡고 있고, 캐나다 선교사 강의를 하며 동북아 선교를 돕고 있던 차라 선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개강 시점 임박하여 등록하였다. 서울에 올라와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느라 바빴다. 영업 활동 보고서를 퇴근 후 집에서 작성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10월에는 새로 오시는 목사님을 위해 시카고와 토론토를 다녀오느라 시차로 밀린 업무로 바쁘고 지쳤다. 게다가 전입직원 교육기간 중 과제물 하느라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눈병이 났다. 의사는 컴퓨터도 보지 말고 스마트폰도 보지 말고 책도 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저녁 시간 이후에 눈이 피곤해지면 책을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일찍 자고 일어나 새벽시간을 활용했다. 만만하게 보고 조금씩 미루었는데 어언 두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어느 날 이 이야기를 친구에 했더니, ‘설거지도 그때그때 해치우면 별게 아닌데, 쌓아 놓으면 그것도 나중에 엄청난 일이 되지’하면 염장을 질렀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나는 반에 시작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시작했다. 주간 보고서와 관찰 보고서도 11월 10일부터 제출하기 시작했다.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은혜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닿는 부분을 타이핑하여 독서 보고서에 넣을 때 은혜가 있었다. 은혜 따라 작성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려서 은혜를 참아가며 줄여서 입력하느라 애를 먹었다. 주간 보고서와 관찰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GPTI 수강 중에, 새벽예배 말씀 중에, 조원들과의 교제 중에, 일상 중에 받은 깨달음과 은혜를 타이핑하는 시간이 달고 행복했다. 독서 보고서는 11월 초에 시작해서 한 달 안에 7권의 독후감을 제출했다. 욕심은 한 달 안에 전체를 다 끝내고 싶었는데, 퇴근 후에 피로, 피치 못할 저녁 행사 참석 등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활용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금요일 하루를 휴가 내어 독서실 가서 몰아쳐서 끝내려는 시도까지 했지만 막상 휴가 내어도 집안일, 아들 진학 문제, 거래처의 긴급한 업무 부탁 등으로 실제 공부할 시간은 겨우 3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3시간 동안 책 4권의 소제목들을 다 입력할 수 있어서 탄력을 받아서 7권까지 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홍교숙 튜터님과 홍미정 간사님이 동시에 너무 기뻐하셨다, 마치 앓던 이가 빠진 것같이 기뻐하셨다. 남보다 숙제 좀 늦게 낸 것 가지고 뭘 그리 좋아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뻐하시는 걸 보니 좀 더 늦게 낼걸 그랬나요?’ 농담을 던졌다. 그랬더니 손사래를 치며 기겁을 하신다. 마음을 무겁게 해드린 게 죄송하고 끝까지 기도하며 응원하며 기다려 주신 것이 참 감사하다. 오늘과 내일에 걸쳐 2~3권을 더 해내고 싶다. 아니 남은 4권을 어서 다 마치고 싶다. 정말 오랜 세월 만에 도서관/독서실 분위기를 엔조이했다. 행복했다. 강의 들으면서 새롭게 깨닫고 인상 깊은 내용들이 많았다. 문화의 차이, 현지 문화에 성육신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 선교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 선교로서의 비즈니스,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선교의 개념과 내가 하는 사역의 선교타입에 대한 이해 등. 그리고 함께 훈련 받는 선교사들 개개인의 삶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됨도 믿음에 힘이 되었다. 말씀 암송은 어찌 그리 달콤한 지. 아침에 하나님의 마음을 상상하면 말씀 암송하면서 출근하는데 말씀의 능력으로 영적을 건강해져서 인지 사무실 직원들이 평소보다 더 반갑고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훈련 초기부터 훈련에 참여한 같은 훈련생 사이의 갈등을 보았다.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에도 몇 번의 갈등을 보았다. 더러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가치관과 관점이 다르다는 것,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하지 않다는 것, 차이가 있다는 것, 이를 인정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혜롭게 대화 해나가야 한다는 것, 내 생각과 다름에 화가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서로 공감되는 포인트를, 왜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지 그 시작점을 잘 찾아 나가서 천천히 이해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럴 때에 서로의 선택이 다르더라도 상처는 남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된 것도 좋은 훈련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 가운데에서도 얼마든지 갈등과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준비하고 나가야 함을 깨닫게 된 좋은 훈련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끄실까? 이 훈련이 마칠 무렵인 내년 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된다. 손창남 선교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보면서 나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가만히 돌이켜 보게 된다.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 필요한 시기에 선교사 훈련 받게 하시는 하나님, 나를 고치시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성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나를 어떻게 만들기를 원하시면 어떻게 쓰시기를 원하실까? 손창남 선교사는 일찌감치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시작하는 복을 누렸다. 그럼에도 참 인생이 짧다. 나는 이제 뒤늦게 시작하여 60대 70대를 거치며 어떤 모양을 쓰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며 쓰임 받으며 나아가는 삶만큼 복된 삶이 있을까? 그리고 노후 준비가 부족하여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미래의 소망과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을까?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말씀하소서. 듣게 하소서, 고쳐 주소서, 앞길을 열어 주소서. 주님 나라 위해 달려가게 하소서. 주님 만나는 날 기쁨으로 달려가 안기게 하소서.
-강OO < OO 교회>- GPTI 50기 훈련의 시간이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9월이 되자마자 시작된 GPTI 훈련은 사실 생각과 많이 달랐다.선교 훈련을 나름대로 많이 받았던 나로서는 일단 훈련에 참여하는 훈련생의 연령대부터 적응이 되지 않았고, 매주 토요일 1시부터 9시까지 빠듯하게 진행되는 스케줄과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속에서 내가 가져야 할 훈련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훈련 첫주 시작하던 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선교는 버림과 포기와 자기 부인인데 이 훈련을 통해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GPTI 50기가 시작되면서 나에게도 짧은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로 장기 사역을 떠나기 전 GPTI 훈련만을 남겨 둔 상태에서 후원비도 없이 훈련 기간을 보내야 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짧은 직장 생활의 경험을 허락해 주셨다. 만일 내가 이 직장 생활도 없이 GPTI 훈련을 받았다면 아마 지금 보다 더 이 훈련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선교사적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GPTI의 정체성을 모르고 왔었기 때문에 훈련 전에는 나의 직장 생활이 훈련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GPTI 훈련에 참여할수록 직장 생활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과제를 함에 있어서도, 생활 속에서 배운 것들을 적용해 감에 있어서도 직장 생활은 큰 의미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환경에서 사역 하게 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왜 이 시기에 나에게 직장생활과 훈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시는지 이해하게 된다. GPTI 훈련을 하면서 선교를 정의하는 것에 있어서, 또 훈련생으로서 해야하는 의무적인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많은 내적 갈등과 의문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이 훈련 끝에 남는 것은 바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교에 대한 많은 지식과 배움을 비롯하여 심리적,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자기 이해와 관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결국 죄인이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있을 수 없는 은혜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기에 결국 우리로 사역하게 하는 것은 개인이 가진 지식이나 어떤 모델링 된 행위나 성취하고 있는 결과의 내용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힘들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이다. 부족하고 모자란 인생들이 서로 한데 어울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승리하는 모습들을 볼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이미 수십 년의 전 세대를 살아오신 분들이고 나름대로 사회 속에서 성공하신 분들이라 사고하는 방식에서 부터 많은 차이가 있어 힘든 점이 많지만, 그 분들을 통해 배워갈 점들을 찾을 수 있고, 또 어르신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앞으로의 해외 사역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을 모두 동역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다. 훈련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50기 동기들이다. 앞으로 이 훈련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 절대 완전해질 수 없다. 어떤 모습을 바라고 이 훈련이 훈련생들을 훈련시켜 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더 우리의 것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남은 기간 동안 우리에게 우리의 아픔을 서로가 더 끌어안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에서 그럴 듯하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이 주목하지 않지만 그 속에 주님이 보이는 삶이 우리에게 목표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가식적인 모습을 버리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온전한 공동체가 무엇인지 경험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실력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우리의 역할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발현된다. 어떤 세상의 가치도 우리를 승리하게 하지 못한다. 나는 GPTI 50기를 하며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원리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는다. 이 훈련에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집중하는 은혜가 더 있기를 바란다.
-김OO < OO 교회>- GPTI 훈련을 권유 받고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주차가 지났다. 지금도 과제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작할 때보다는 아주 조금 덜 힘든 것 같다. 청소년부에서 같이 봉사하고 있는 교회 집사님의 소개로 GPTI을 알게 되었다. 올해 여름 청소년부 수련회가 강원도 화천에 있는 수양관에서 진행 되었는데 첫날 교사들이 모두 참석하게 되었고 차를 같이 타게 되었는데 GPTI를 소개하셨다.‘대학시절이나 20대 때 장단기로 선교를 다녀 오신이 있으신지요?’라고 질문 하셨고,‘못간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교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훈련을 받아 본적도 선교를 다녀온 적도 없었다. 처음 권유 했을 때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넘겼는데 계속 권유하셔서 진지하게 생각했고 무엇에 이끌리듯이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다.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글쓰기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스트레스부터 받는 나이기에 몇 가지 보고서를 일주일 단위로 제출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 훈련을 시작하면서 중보기도를 지인들에게 부탁했었다. 훈련과정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도제목을 작성하여서 전달했는데 그 기도제목에는 이번 과제 제출을 하면서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해 달라고 적었다. 여전히 글 쓰는 것은 어렵고 스트레스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내용면에서는 너무 부족한 보고서들이지만 매주 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훈련 받는 동안 강사님들의 강의와 삶의 간증 그리고 다른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이 훈련을 받게 하신 이유와 내가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알기를 원한다. 이 훈련을 받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은혜이다. 매주 받는 은혜가 크다. 앞으로 공동체 훈련, ORT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남아 있는데 좀 더 적극적인 자세와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에 참여해야겠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김OO < OO 교회>- GPTI 50기 훈련을 받기 전 50기로 함께 받고 있는 한 선교사의 소개로 GPTI 훈련을 되었고, 함께 훈련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까지 보았지만 정작 훈련 전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불안한 마음에 이직을 위한 프로그래밍 교육을 주중에 받게 되었고, 퇴직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이 함께 있었기에 훈련에 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있어 훈련 받기 일주일 전 훈련을 받지 않겠다고 훈련원에 통보하였다. 그렇게 GPTI 훈련 첫날 OT에 함께 하지 않았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있을 무렵, 훈련원에서의 배려로 GPTI 훈련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훈련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문인 선교사 훈련인데, 아직 나이도 어리고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있기에 선교사는 선교사인데, 전문인 선교사라는 말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과연 나에게 전문인이라는 호칭이 타당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상황과 환경을 내려놓고 훈련에 임하기로 정하게 되었다. GPTI 50기 훈련을 받는 중, 이 훈련이 쉽지 않구나 라는 것을 한 주 한 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훈련은 토요일 오후,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기에 토요일 일정을 무조건 비워야 되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주마다 진행되는 독서보고서,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가 매주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매주 선교 교육에 독서보고서가 연관되어 교육이 더욱 쉽게 다가왔으며, 저녁 시간에는 삶을 터치하기에 전인적인 선교 훈련을 받을 수 있어 매주 타문화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훈련을 통해 나의 모난 부분을 먼저 터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불평, 불만 등이 많았던 나지만 이 훈련을 통해 그런 불평, 불만들을 내려놓게 하셨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다듬고 계셨다. 또한 함께 훈련에 임하는 훈련생 선교사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쁘게 훈련에 임할 수 있어 좋았다. 여전히 이 훈련이 쉽지 만은 않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이면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50기 훈련생 대부분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묵묵히 이 훈련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힘내서 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이제 몇 주 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 안에서 이 훈련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김OO < OO 교회>- 끝이 보이지 않았던 훈련이 벌써 중반을 지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신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 전에 많은 고민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매 주 훈련을 지나오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먼저 좋은 만남의 축복을 통해 함께 기도하고 삶을 나눌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매주 귀한 강의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더욱 묻고 구하며, 이끄심을 신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도전이 되기도 했고,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할 때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강의들을 들려주셔서 주님께서 함께하는 강의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선교적 삶을 살아야지라는 다짐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선교사님들의 준비, 마음가짐, 재정상태, 건강체크까지 배우게 되면서 마음만 있고, 열정이 가득하다고해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준비가 되고 무엇보다 나의 교만함들을 깨쳐주셔서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과 현지인들 앞에 겸손하고 섬김의 마음을 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쓴뿌리가 있다면 더 뽑아주셔서 주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영육의 자유함을 누리며 주님따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아직 올해가 남았지만, 내년도에 있을 많은 변화와 배움들 속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신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며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믿음과 신뢰함을 갖고 담담하게 주어진 길들을, 가끔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묵묵히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남아있는 필리핀 단기선교를 통해서도 보여주시길 일들과 주실 마음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나를 향한 계획들을 하나님과 함께 그려나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하며, 나 뿐 아니라 모든 선교팀원이 인도하심을 깊이 누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귀한 강의들과 만남을 놓치지 않고 나의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길, 그리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훈련받고 있는 김보민 선교사님과도 이 훈련을 통해 서로의 성품을 돌아보고, 신앙을 나누며 하나님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게 해 주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김OO < OO 교회>- 2018년 7월 GPTI 훈련을 받기로 결정하고, 훈련 지원서를 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개강 후 3개월이 지났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이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너무도 풍성하다. 첫 번째로 먼저 나의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돌아보도록 허락하셨음에 감사하다. 주간보고서와 관찰보고서를 통해 나의 삶의 많은 부분들이 무너져있었음을 보게 하셨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갈망하며, 선교를 나가는 것보다도 먼저 준비되어야 함을 깨닫고 알아가게 하셨음에 감사하다. 만약 훈련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의 삶이 망가져있는 부분을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훈련의 시간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두 번째로, 선교에 대한 열정에서 성실하게 준비됨이 필요한 것에 나의 시선이 바꾸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선교지에 가겠다는 결정을 했지만, 선교에 대한 나의 열망만으로는 선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주신 열정으로 더 열심히 훈련받고 준비되어야함을 깨닫게 하심으로, 준비되는 시간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님을, 합당하고, 마땅한 것임을 알았다. 세 번째로, 선교에 대한 나의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선교에 대해 배웠고, 또한 선교를 나가보기도 했지만 내가 얼마나 선교에 대한 잘못되고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묵상하게 되었다. 죄인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그 은혜, 심지어 성육신하심으로 종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그 은혜를 묵상함을 통하여, 선교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교정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의 삶에 침투해 들어가 그들보다 나를 더 낮게 여기며, 그들 문화 안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 선교사가 편한 교회가 아닌, 현지인들에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 또한 현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들 문화를 공부하고, 그들 문화에 깊이 본딩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선교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방향성을 가질 수 있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GPTI훈련을 통해 베푸신 은혜에 너무 감사드린다. 이렇게 순간순간 깨닫게 하신 은혜들, 선교에 대한 올바른 지식, 귀한 선교사님들과의 교제,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를 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시간들 등등 이 많은 것을 허락하시고, 우리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한다. 앞으로 또 3개월의 시간이 더 남았지만, 이 시간동안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시간이기에 주실 은혜들을 기대하며, 훈련에 임하길 소망한다.
- 김OO < OO 교회>- 훈련을 받기 전에 장시간 서서 가르칠 수는 있지만 앉아서 있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거기다가 목디스크 때문에 몇 시간을 훈련하시는 강사를 보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9기의 환대 속에서 강의실에 들어서자 네 분의 튜터와 두 분의 간사, 그리고 원장님이 50기 훈련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비슷한 허깅이 있었다. 아버지학교에서는 남자만 있어서 다 껴안고 인사를 했고, 얼룩말 무늬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 축구팀 유벤투스와 같은 옷을 입고 “사랑합니다.축복합니다” 그랬는데 약간 다름이 있었다. 남자들 끼리 허깅하는 것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여성 선교사님들에게도 손을 잡고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축복을 나누는 인사를 반절은 하고 반절은 못했던 것 같다.날이 지남에 따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장시간 앉아 있는 것도, 세 종류의 보고서를 쓰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MT를 갔다 와서는 다른 선교사님들과 낯가림은 조금 사라진 것 같다. 훈련 첫째 날은 포항에서 새벽에 목동으로 와서 훈련을 받고 다시 포항으로 내려갔다. 피곤함도 피곤함이지만 주일날 온전한 정신으로 예배드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김주경 튜터님이 지속적으로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알아봐주셨다. 49기 중에 내 아내의 성과 같은 “남선교사님”이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는데 내년 2월까지 있을 수 있냐고 했더니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지, 쉽지 않지. 그리고 나서 김주경튜터님이 소개해준 일산 빛무리교회 내의 게스트하우스로 간단히 짐을 꾸려서 이사를 했다. 너무 좋았다. 바로 옆에 교회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특히 새벽기도를 나가는 것이 너무 편했다. 목사님도 너무 좋으셨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변수가 생겼다. 온도차로 인해서 콧물 알러지가 시작되었다. 몇 주 지나고 나서 포항으로 내려가서 연구실에 두었던 전기라디에이터를 가지고 일산으로 돌아왔다. 라디에이터가 성능이 좋아서 금방 집안이 따뜻해졌다. 문제는 라디에이터 와트가 높아서 전기세가 만만치 않게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러는 와중에 GBT의 선교사님 한 분이 계속 게스트하우스를 우리를 위해서 찾고 계셨다. 그런데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대부분은 길어야 한 달이고, 보통은 보름이었고, 선교사임을 인증할 수 있는 서류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내가 속해있는 기관에 전화를 해서 간사한테 관련서류를 보내라고 할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김주경튜터님이 아파트를 알아봐주셨고 거기를 두 달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은평교회를 방문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돌아오면서 은평교회 담임목사님께 선교편지를 보냈더니 서울에 오면 한 번 들리라고 하셨다. 일산과 은평교회가 20여분 거리여서 방문했더니, 목사님이 숙소를 물어 보았고, 콘테이너 박스로 된 집에서 산다고 했더니 은평교회 옆으로 오라고 하셨다. 사모님이 부동산을 몇 군데 방문해서 집을 알아봐 주셨다. 빛무리교회 목사님은 집이 추워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고, 연탄난로를 놓아주시겠다고 했다. 포항교회 담임목사님이 셀 방문을 한다고 해서 다시 포항을 내려갔다. 서울을 올라오는데 은평교회 사모님께서 전화를 해서 교회를 들렀다 일산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은평교회에 갔더니 미리 보셨던 집들을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집이 구해졌다. 오피스텔인데 매달 내야 되는 세가 꽤 되는데 목사님이 GBTI 훈련 끝날 때까지 내어 주셨다. 나와 내 아내는 작년에 타 선교단체에서 선교훈련을 받았었다. 그런데 GBT에서 교단훈련을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선교단체는 훈련을 어떻게 받았는지에 대한 평가서가 없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또 훈련을 받아야 한다니! GBT에서 정회원이든 준회원이든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정하는 기관에서 훈련을 받으라고 해서 GPTI에 훈련을 지원했다. 성경 번역하는 선교사들을 파푸아뉴기니에서 보고 나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심각했다. 성경번역을 마친 성경의 30% 이상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 실정인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번역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사역하는 언어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모른 상태에서 성경을 번역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조금만 도움을 주어도 양질의 성경 번역이 되기 때문에 나와 내 아내는 GBT의 회원이 되어서 다시 선교지에 나가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3월에 훈련비를 입금하고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했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부터 미국에서 12학년으로 올라가는 자매가 성경번역의 뜻이 있다고 기초교육을 해달라고 해서 수업을 시작했다. 2주 정도의 훈련을 마치고 그 자매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와 내 아내는 GPTI를 훈련받기 위해서 목동으로 올라왔다. 선교지에서 긴장 상태로 지냈고, 그리고 돌아와서도 몸이 쉬지 못한 상태였는데 수업이 재미있었다. 내게는 훈련이 아니라 휴식 기간인 것 같다. 만약에 포항에서 토요일마다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반복했으면 몸이 혹사당했을 것 같다. 훈련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아릴락에도 출근했을 거고, 컴퓨터에 앉아서 선교사님들의 언어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분석된 자료를 바탕으로 언어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평교회 담임목사님이 교단훈련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7개월짜리를 받아야 되는지 2주짜리를 받아야 되는지 알아보았더니 7개월짜리는 3월부터 시작해서 9월까지 이므로 문제가 되었다. 6월 말이나 7월 초에는 파푸아뉴기니에 들어가서 POC(태평양 연안 현지적응 훈련)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주 짜리를 하기 위해서 서류 진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성결교단의 교인이 된 지가 4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것과, 평신도 선교사 지망생이라는 것, 훈련이 끝나고 나면 dual membership을 가져야 된다는 것 등이 교단의 해외선교위원회에서는 고민거리이었던 것 같다.기도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세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더 그랬다. 그리고는 해외선교위원회 국장님과 면담이 잡혔다. 국장님과 그 간의 사역과 앞으로의 사역 방향에 대해서 나누었다. 훈련생 선발을 하는 과정에 예외사항이 발생했을 때 국장이 추천서를 써주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국장님이 추천서를 써줘서 계양에 있는 성결교단의 기성센터에서 2 주간의 훈련을 할 수가 있었다. 월부터 금까지 기성센터에서 토요일은 GPTI에서 훈련받는 것이 육체적으로는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2주를 마치고 성결교단의 협력전문인 선교사의 교육을 마쳤다. 이 또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매주 토요일만 훈련을 받아도 쉼의 시간이었는데 2주간의 쉼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니까 훈련을 시키나 보다. 도공이 찰흙을 빚어서 뭔가를 만들 듯이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드셔서 쓰시고 싶은데 쓰이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딱딱한 나무여서 칼이나 조각도를 되면 튕겨나가는 그래서 하나님이 작업하시기에 더딘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주물러도 저렇게 주물러도 조물주에 의해서 쉽게 주물러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GPTI훈련을 받으면서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 남OO < OO 교회>- 파푸아뉴기니에서 다녀오고 성경번역을 하고 싶다는 자매에게 언어학을 가르치느라 녹초가 된 상태로 부랴부랴 면접을 보러 훈련원 사무실에 들렸더니 원장님과 간사님들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면접이 끝나고 원장님과 김주경 튜터님이 먼 곳에서 오셨는데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가는 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물음에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식사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병문안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해 놔서 병문안을 가게 되었지만 왠지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훈련을 받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정상 서울에서 생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GBT의 선교사님 중에 자녀 문제로 일주일마다 기도 제목을 보내주셨던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인지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주시는데 아직 선교사 훈련생의 신분이라 찾기가 어려웠고 교회마다 훈련생은 받지 않는다는 메일이 왔다. 김주경튜터님이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해 찾아 주셨다. 선교사적 삶을 살겠다고 포항으로 내려간 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우리를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고 한 분이 없었던 경우라 고마움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소개 시켜주신 일산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가니 교회가 바로 옆에 있고 목사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셨다. 교회가 가까우니 새벽 기도 가기도 좋고 일교차가 큰 것을 제외하고는 잘 지낼 수 있었다.문제는 일교차가 커지면서 남편이 알러지 반응이 자주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김주경튜터님이 또 게스트 하우스를 부지런히 찾으셨다. 아파트를 마련해 놓으시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고 돌아왔는데 섬세하게 섬김을 받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생들과 함께 중보기도 하는 가운데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동안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목사님이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인사도 할 겸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교제 중에 일산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들으신 목사님께서 사비로 오피스텔을 마련해 주셨다. 처음 포항에 갔을 때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고, 아릴락에서 사역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셨던 목사님과 사모님은 마음이 아프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김주경튜터님과 김영희튜터님 사랑의 섬김과 그리고 많은 분들의 기도해 주셔서 가장 좋은 곳에 머물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교회와 가까워서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국어로 듣고 마음껏 충분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감사하다. 선교지에서 풍토병에 걸려서 건강도 악화되고, 동역을 하면서 마음이 힘든 부분이 있어서 불면증에 걸려서 면역력도 약해졌는데 이 시간을 통해서 회복 시켜 주시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부어 주시고 다음 사역의 승리를 위해 무장 시켜 주시는 시간인 것 같아 감사하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2조 조원들은 정말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훈련을 받기 위해 만난 지 얼마 안됐지만 오랜 시간 알아왔던 것처럼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고 친밀하다. 이미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인 조원들과 최고의 튜터님과의 만남도 감사하다. 언제나 격려해주시고 조원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고 섬겨 주시고 늘 지혜롭게 말하시고 늘 조원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며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튜터님이 계셔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2조원들은 더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조원 분이 부재중인 자리에서 부재중인 조원을 칭찬하는 것을 보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매 시간마다 명 강의를 해 주시는 강사님들과 주간에 내주신 과제물들을 통해 일상적으로 그냥 스치고 지나갈 일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예비 선교사로서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깊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선배 선교사님들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그분들이 시행착오를 겪어 가며 배웠던 일들을 쉽게 잘 풀어주셔서 배우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자로 성숙하게 되기를 바란다. 훈련하는 동안 배웠던 것들을 사역지에서 잘 활용하여 늘 승리하기를 바란다.
-김OO < OO 교회>-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주님 제가 전문인선교사입니다. 주님 제가 전문인선교사입니다. 이렇게 외치고 공부 시작한 지 반이 지났다 처음에 49기 손한웅 선교사님한테 GPTI를 소개받고 많이 망설였다 토요일 수업도 있고 제일 걱정인 것은 외우기를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손한웅 선교사님이 외우고 독후감 쓰고 ,주간보고서 쓰고, 관찰보고서 쓰고 암송은 다 외워서 발표해야하고, 쓰는 시험도 보고, 강의 듣고, 내용 정리도 해야 하고 나중에 정리한 것을 또 시험을 본다고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솔직하게^^ 외우고 발표하고 암송을 써서 시험보고 독후감정리하고 강의내용 또 정리하고 그것으로 또 시험보고 앞에 서서 하는 것도 정말 싫은데..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또한 매일 일기 쓰듯이 주간보고서를 써야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있음을 발견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관찰기록은 정말 너무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어려운 숙제가 관찰보고서이다 그래... 그래도 이 나이 먹고 마지막으로 글도 써보고 발표도 해 보고 외워도 보고 도전해보자 생각하고 무조건 학비를 입금하였다 그런데도 취소할까? 몇 번이고 망설이고 망설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독후감 쓰기를 너무 싫어해서 학교 다닐 때도 독후감 쓰기 숙제를 안 해서 화장실 청소를 한 적도 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 때는 화장실 청소하는 아이들도 많아서 화장실 청소하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훈련원의 가는 길은 얼마나 또 멀고 험난한지 (길치라서 멀면 아예 포기해버린다 좋아하는 장구수업도 안갈 정도다) 그리고 49기 간증할 때 찾다가 그냥 집으로 갔다는 말이 더욱 생각이 났다 49기 손한웅 선교사님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오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을 해 주시고 자가 운전을 직접 도와주시고 해서 마음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다. 지난주에는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자리가 없어서 계속 서서 오니 허리도 아프고 9호선 급행은 사람도 많이 타서 가방을 앞으로 하고 꼭 타야한다 얼마나 힘든지 임산부 자리에 앉아서 왔다 사상최초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이다 그러면서 기도하면서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암송도 운전하면서 계속 떠들면서 외웠다 신기하게도 크게 소리 내어 외우니 나의 뇌가 놀랬는지 입력을 시켜주었다 한 절씩 한 절씩 늘어가는 암송도 잘 외워졌다 독후감도 시간 나는 대로 줄을 쳐 가면서 읽어갔다 그러나 느낀 점과 적용한 것을 쓰려니 쉽지가 않다 책의 내용 중에 좋은 글은 따로 동그라미 쳐가며 나의 느낀 점을 함께 써갔다 느끼는 점과 적용할 생각들은 있는데 글로 나타내서 기록하려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주 한 주 지나다 보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실히 준비하다보니 지혜가 생긴다 . 잘 하려고 하니 더욱 힘들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의 한 주간의 일을 기록하고 사사로운 일들을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주관하시고 간섭하심을 더욱 깨닫는 시간을 체험하고 그것을 관찰하여 써가는 관찰보고서도 많이 요령이 생겼다. 10권의 독서 기록서를 쓰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한 강의시간도 유익하고 꼭 알아야 하는 많은 것을 배우니 너무 재밌고 즐겁다. 이젠 토요일이 기다려지고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어떻게 보면 짧다는 생각도 조금 해본다..^^ 앞으로 남은 공동체 훈련과 해외리서치도 기대된다. 내가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나의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잘 훈련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심으로 인도받는 김은숙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이 훈련은 정말 힘들다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꼭 받아볼 것을 권면한다. 또한 커리큐럼이 너무 좋다고 권면했다. GPTI를 통하여서 남은 기간 잘 훈련받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선교사의 사명을 더욱 감당하고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와 세계의 모든 곳에 GPTI 출신 전문인선교사들은 다르다는 호평을 많이 받도록 계속 기도할 것이다.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할렐루야~~
-심 OO < OO 교회>- 훈련을 통해서 첫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신다는 느낌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다. 힘이 든다는 것은 분명 훈련을 받는 것임에 틀림없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좀 더 세상을 힘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본 베이스가 큐티, 성경읽기, 기도, 예배..등 이런 기본적인 신앙생활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 또 사람들에 대해서 배워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힘이 되고 있다. 독후감을 통해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았다. ‘영적지도자 만들기’라는 책을 통해서 목표가 생겼는데, 그것은 유종의 미이다. 다윗처럼, 사무엘처럼, 다니엘처럼 유종의 미를 거두는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많은 문제들이 정체된 리더들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리더, 그리고, 그 삶이 성령을 통해서 변화된 리더만이 영향력을 주고, 또 리더십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세워졌다고 해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 집단이 느끼는 가치에서 뛰어날 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리더가 되어도 오히려 왕따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리더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임을 알았고,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더욱 알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 동안에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었던 우선순위의 문제나 쉼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세디스트처럼 우릴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를 일만 시키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어쩌면 일 중독에 빠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지나치게 일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사역보다 우선하고, 사역을 그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끌어가고, 그 시간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지경을 넓히시며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시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일과 예배’라는 책을 통해서 일이 예배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을 더욱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삶에서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과의 동행과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낮추는 것이 더욱 습관화 되어서 훨씬 도움이 된다. 선교훈련이 내게 지금 이 때에 가장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낀다. 여전히 힘들다. 괴롭고 지친다. 그러나 소망이 생긴다. 그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망이다. 내게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과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공동체훈련과 ORT를 남겨두고 있다. 더욱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으로 갈렙에게 나타나셨듯이, 내 눈이 10명의 정탐꾼의 눈이 아닌 여호수와와 갈렙의 눈처럼 하나님께 눈을 들어 보게 된다면, 비록 훈련이 힘들지라도 능히 가나안 땅을 취하고 약속의 땅을 취하며, 능히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 내 맘에 품게 하셨던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내가 하나님과 더욱 동행함으로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의 느끼는 가치에 더욱 뛰어나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을 따라서 그 능력만큼 주의 일을 감당하며, 끝까지 그 일을 잘 마무리 지어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기를 소망한다. 어찌보면,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미 한번 크게 기독교에 실망한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기독교의 모순된 점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다. 어찌보면, 땅 끝은 우리 집 내 동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를 잘 다녔지만 지금은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하나님은 없다고 하고 불신자되어 버린 내 동생, 교회에서 상처받고 하나님이 없다고 떠난 사람들, 그들도 땅 끝이고, 그 북아프리카에서 기독교에 실망하고 이제는 이슬람에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헛된 바벨탑을 공들여 쌓았던 내 삶을 하나님이 무너뜨리시고, 이제 나를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GPTI훈련은 짧아서 좋다. 그리고 짧아도 있을 것은 다 있고, 중요한 것들은 다 한다. 그리고 이 작은 단체가 하는 일이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감당하는 선교의 1:100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 같다. GPTI라는 선교단체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GPTI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도록 말씀하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어디라도 갈수 있고 어디라고 가겠다는 각오가 선다. 이전에는 어디로 어떻게 언제 갈지도 고민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가면 되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호가 때로는 이중으로 삼중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면 누리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과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이 힘이 되고 더욱 견딜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한계에도 계속 부딪힌다.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서 부르신 그분의 상을 기대하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더욱더 이 GPTI 훈련을 통해서 일하실 주님을 기대한다. 그분은 내 아버지시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유업을 받을 자이다. 비록 하나님이 상을 차려서 함께 내 친구들과 누리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고, 나는 기쁜 맘으로 종들과 함께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며, 동생의 귀환을 환영할 뿐 아니라, 또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 대신 동생을 찾으러 나가는 큰 아들의 모습을 갖추기를 소망한다.
-유OO < OO 교회>- 훈련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개월이 다 되었다. 성경번역 선교회에서 직업인전문선교프로그램인 GPTI에 대해 처음 들었고, GPTI 훈련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들었다. 지난 3월에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인턴선교사로 선교현장을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고민하던 중 남은 인생을 성경 번역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보다는 남은 기간에 개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면서 GPTI훈련에 참여하기로 했다 .GPTI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면서 훈련에 참여하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시간이 넉넉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훈련과정 중에 많은 일정을 잡아놓았다. 하지만 GPTI 훈련이 생각보다 과제가 많다는 것에 놀랐다. 매주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 독서보고서를 제출하고 강의를 제외한 경건회 인도, 주간 간증, 세품 기도회 등을 훈련생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인도해야 했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이 있었다. 특히, 과제 중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고 제출해야하는 독서 감상문이 제일 어려웠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하는 성경읽기 모임에서 하루10장씩 성경을 읽고, 신학공부하면서 일주일에 2chapter씩 읽어야 하는데, 거기에 더하여 10 페이지에 해당하는 독서 감상문까지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훈련과정이고 선교활동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르기로 했다. GPTI에서 훈련받으시는 분들은 목회자, 교수, 개인사업, 한의사, 공무원, 선교회간사, 기업체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훈련기간 중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사실 이 훈련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가 해외로 선교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거나, 선교에 관심이 있어 앞으로 퇴직 후 해외로 선교하려는 분들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순수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려고 하는 그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훈련프로그램 중에 강의를 통하여 다양한 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강의를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고 계신 지 엿볼 수 있었다. 청년시절 대학교 정문 앞에서 매일 소리 지르며 복음을 전한 분도 계셨고, 직장에서 그리스인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동료들에게 보이며 복음을 전하는 분도 계셨고, 삶 전체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일정으로 짜여 계신 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선교를 떠나신 분 등 다양한 삶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강의를 통하여 선교에 관련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강사님들의 개인적인 신앙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듣는 것이 나를 도전하게 했다. 이제 훈련의 중간을 넘어섰다. 앞으로 있을 공동체훈련과 해외리서치훈련(ORT) 준비로 분주하다. 처음에는 각 조를 중심으로 모임이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ORT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ORT 팀별로 비행기표 예매를 마치고 이제는 해외에 선교를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준비하는 일에 분주하다. 4박5일 동안 ORT훈련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 둘 각오를 하신 분들도 계셨다. 지금까지는 과제 제출과 강의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면 이제는 현장실습이 포함이 된다. 지금까지의 만남과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은 없고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선교지에 나가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공동체 훈련, ORT, 남은 수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떻게 간섭을 하실지 기대가 된다.
-이OO < OO 교회>- 훈련을 받은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처음 훈련을 받기 위해 면접을 본 후 집으로 내려 가는 길에서 나는 많은 걱정을 했다. 내게 주어진 환경들이 여러모로 어려운 장벽들로 가득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멀었으며, 훈련 기간 동안 드는 경비와 또 수업의 일환으로 주중에 빠져야 하는 현실이 훈련을 받기에는 힘들 수 있는 조건들이 너무도 많았다. 혼자 부산에서 홀로 왕복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체력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훈련을 받기에 불리한 상황들이 내 앞에 더욱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1박 2일 불광동 훈련에선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일이 오후에 시작해 저녁 늦은 시간에 마치는 직업이라 금요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는 초고속으로 차를 몰고 집에 가야만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1시간, 이 1시간 안에 집까지 차를 몰며, 이내 짐을 챙기고 다시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 돌릴 틈 없이, 서울로 왔지만 새벽 3시여서 잠시 육신을 쉴 곳을 찾아야 했다. 미리 살펴본 블로그 글을 통해 알아본 남부산 터미널 근처 찜질방에서 3시간 정도 눈을 부치고, 다시 아침 8시까지 불광동으로 가야만 했다. 모든 것이 초행길이라 터미널에서 내려 팀비전 센터까지 가는데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아침에 조별 사진이 촬영이 있기에 지각은 해서는 안됐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고, 튜터님께서 차로 나를 픽업해서 센터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어디 이것 뿐이랴. 토요일엔 3-4시간 쪽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열차를 타야만 했고, 이후 내려오는 열차는 새벽 3시 도착, 집까지 걸어오는데 40분이나 걸렸다. 이후 정리하고 씻고 바로 눈을 붙여도 5시,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오지 않아서 7시에 잠이 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다시 4시간 정도의 잠을 청하고 9시 30분에 일어나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해야 했는데, 이러한 훈련 패턴은 나의 체력을 극한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당연히 예배 시간에, 그것도 오후 예배 시간에는 밀려오는 잠에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월요일 출근.... 정말이지 쉼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훈련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은 훈련 일정들.... 이후의 훈련이 또 다시 나의 육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훈련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 첫 훈련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저 참고 잘 견디자는 생각으로 버텨보겠다고 다짐했지만, 훈련센터 원장님의 말 한마디가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받으시는 이 훈련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순간 나의 마음 한 구석 심금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내가 이 훈련을 받기만을 하나님께선 얼마나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리셨을까?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리셨던 분이셨다. 이 긴 과정을 기다리셔서 이제야 훈련을 받기 위해 센터에 입문했으니 하나님의 입장에선 아마 감개무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험난한 선교지에서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하셨을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훈련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육신의 고통 없는 훈련이 어디 있을 수 있으랴. 이 훈련이 언젠가 선교지에서 받을 어려움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때론 강의가 지루한 적도 있었으며, 또 어떤 강의는 유익해서 많은 도움도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최고는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이 훈련은 나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라도 훈련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이가 있기에, 나는 지금 이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를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에 하나님께 진정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의 훈련에서도 힘든 일정이 나를 괴롭게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이OO < OO 교회>-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늦가을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만 지금은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입고 다닌다. GPTI가 전문인 선교교육기관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훈련받고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가 무섭기도 하다. 다시 생각하니 믿음의 시작도, 교회 다니며 제자훈련 받고 순장 사역을 담당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GPTI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으며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기억력도 떨어지고, 순발력도 없고, 찬양의 은사도 없고, 해외에서 선교의 의지도 없으면서 젊은 선교사들과 같이 지내려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편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 끝까지 전도하라는 대사명에 순종하는 젊은 선교사들을 보며 나의 마음이 찡하다. 독수리처럼 창공을 날면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고 보이리라.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 저편에도 계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도 함께 하시니 우리의 안과 밖을 전부 관찰하신다. 독수리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우리. 여기 GPTI가 우리를 지혜롭게 세상을 만나게 하신다. 넓은 세상에 수많은 종족들이 다양한 관습을 갖고 다양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 선교사는 낯선 곳에서 하나님의 빛을 퍼뜨리려 한다. 그러려면 그곳에서 현지인과 함께 하라 하신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충성, 온유, 절제,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이다. 이 열매가 여기서 접목되어 다시 싹을 트게 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 대한민국도 120여 년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오신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의 쓰고도 단 풍성한 열매다. 그 열매의 지혜는 세월이 흘렀건만 변함없다
-윤OO < OO 교회>- GPTI훈련 받기 전에 사랑의 교회에서 제자훈련과 사역 훈련을 받고 새벽예배를 하면서 주님과의 친밀감을 회복한다고 생각했는데 죽전에 와서 유치원을 하면서 문제 속에 치여서 평안이 없고 두려움과 미래의 소망마저 작아지고 세상뉴스 거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때 이영희 선교사님과 김선호 선교사님이 훈련을 권유했다. 일이 많아 시간 낼 수가 없어 거절하다가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 수 없다라는 벼랑 끝 심정으로 훈련을 참여 했다. GPTI 훈련을 받으면 내가 바뀔까? 생각하면서 훈련에 참여했다. 맨 처음에는 남의 소리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인생의 주인 바뀜이 시작되었다~~ 내가 주인이 내가 아니고 주님이라는 것을 ~~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니 내 마음의 평안이 찾아 왔다. 두려움도 없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자는 결단도 생겼다. 지금은 주님의 인도함에 순종하며 기쁨으로 하루하루 나가고 있다. 유치원의 상담하는 것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깐 자신감이 생긴다. *훈련에서 배운 것을 (상담할 때나. 선생님들 관리할 때나, 아이들 훈육할 때나, 적용하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관계가 친밀해진다.*기질검사에서 나에게 부족한 결단력과 강함을 경영에 적용하니까 체계를 잡는 것 같다. 나의 경제적인 필요를 주님이 채워주시고 유치원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용될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하신다. 다만 먹고 마시는 필요를 채워주는 곳이 아니라. 중요한 어린시기에 아이들을 잘 케어해서 하나님의 인물로 키워야겠다는 사명과 BAM기업의 나눔의 마음 도 주셨다. 나는 바울사도가 외친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전2장2절)의 고백이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GPTI의 원장님을 비롯한 섬기는 튜터 ,총무님들의 수고에 너무 감사드리며 축복한다.
-이OO < OO 교회>- 초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면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에서 저는 천사콤플렉스가 있었었습니다. 어릴 적 믿음의 목표는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권사가 되어 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성수, 수요예배, 금요철야를 나가고 성가대, 교사, 임원 등 나의 삶의 중심이 교회였습니다. 청년이 되어 믿음의 회의가 왔을 때 하나님은 제자양육의 길로 부르셨습니다. 전도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부르짖던 내가 정신 차려보니 순원과 훈련생 앞에서 전도의 본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저 정말 못하겠어요. - 순자야~ 내가 널 사랑한다 ” 직장일과 제자양육으로 지쳐 기도할 때 나를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음성에 연약한 나를 세웠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 예수님 앞에서 창피하여 도망가는 삶은 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십자가를 향해 달렸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 4명과 직장생활 양립의 슈퍼맘 삶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막내가 7살 되던 2016년, 남편이 선교사의 삶에 대해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세요? 응세집사만 보내고 제가 아이들 책임지고 이 한국 땅에서 열심히 하나님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전 아니에요, 열심히 선교헌금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선교사라는 단어가 전 무서웠고 저를 지나가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큰아이 2명과 유럽여행 한 번 해 보겠다고 5년 동안 모은 적금을 가지고 우리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 겸 가족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언더우드선교사님의 기도문 일부분입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린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이 기도문을 처음 접했을 때 전 펑펑 울었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선교사님들에게 빚진 마음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선교여행 후 남편의 마음은 더 확고해졌고 청소년기 아이들 3명을 데리고 지금은 아니라는 주변의 권면 속에서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올 1월 친구의 소개로 전문인선교훈련을 알게 되었고 저의 예상치 못한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전 한 달에 2번은 토요일에 출근해야만 하는 부서에 있었는데 토요일 출근이 없는 부서로의 이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확신 가운데 상반기 훈련을 남편이 받았습니다. 제가 아닌 남편의 훈련이기에 기쁘게 제가 원서를 냈습니다. 50기 2018년 하반기 훈련을 앞두고 우리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내가 훈련을 받는 것이 맞는가? 남편 혼자서 온전히 토요일 가사와 육아를 감당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의 방치와 우리의 건강이 제일 염려되었습니다. 훈련 개시 1주일 전 남편은 나에게 훈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희생과 결심이 보였습니다. 남편이 훈련 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다르게 전문인 선교훈련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쉼과 교제의 상징인 토요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동행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시선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며 예수님만 생각하고 성령님의 권능을 경험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1회 7~8장의 1권의 독후감. 말씀암송. 주1회 관찰보고서, 매일의 신앙점검을 하는 주간보고서 제출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훈련과 동시에 시작된 한국어자격증 공부와 겹치며 시간과 체력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 훈련원에서 만나는 동기생들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강의들은 내 영혼을 소생케 하여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이 행하실 나와 우리 가정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였습니다. 과제가 밀려도 튜터님들은 항상 미소로 안아주고 격려하여 나를 움츠려 들지 않게 하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주간보고서를 통해 조금씩 무너지던 신앙 습관들을 굳건히 하고 책들을 통해 나의 마음이 단단히 영글어졌습니다. 관찰보고서를 통해 내 삶에 관여하는 하나님을 찾으니 감사합니다. 병점에서 영등포로 출퇴근 하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습니다.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보내고 9시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몸을 이끌고 7시에 나온 4남매가 있는 가정으로 들어옵니다. 10대 사춘기 3명과 말을 나누기 위해 애쓰고 막둥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면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지경이 됩니다. 11시가 되면 난 녹초가 되어 가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과제를 위해 스텐드를 켰습니다. 금요일 저녁은 정말 과제와의 불금을 보냈습니다. 토요일은 청첩장과 쏟아지는 만남의 유혹을 타파하고 목동에 있는 훈련원으로 뛰었습니다. 밥과 빨래와 청소가 자연스럽게 남편의 몫이 되었습니다. 훈련 선배이자 지지자이며 동역자고 친구인 남편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훈련 중반 고개를 넘었습니다. 공동체훈련과 선교탐방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각자 훈련생선교사님에게 행하실 은혜가 기대됩니다. 우리 50기를 특별히 선택하사 동역자가 되게 하신 것을 알게 하실 것에 기대가 됩니다. 선교사는 특별한 것이 아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의 순종임을 깨달았습니다. 가는 선교사든 보내는 선교사든 국내에서 하나님을 알리고 가르치는 자든 다른 나라에서 하는 자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제자이며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지음 받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재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문인선교사입니다. 믿음의 자녀 가운데 특별히 선택하고 부족한 나를 순종케 하여 전문인선교사 훈련을 받게 하사 하나님의 일에 동참케 하신 특혜에 감사드립니다. 훈련 중에 동행한 하나님이 훈련 후에도 동행하사 저를 인도하실 것이며 절 순종케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청년 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 들립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1:7~8) ” 이 말씀을 안 듣고 싶었지만 들렸고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이제 여기에 하나 더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예수님이 안타까이 조급히 부르는 마음이 느껴져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 이OO < OO 교회> - GPTI훈련을 48기 선배 훈련생들에게 소개받고 얼떨결에 받아보겠다고 한 후 어떠한 기대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원장님과 인터뷰를 했을 때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기다리는 한 달 동안은 많은 흔들림이 생각을 통해 마음에 들어왔다. 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시간은 주어질 것인지? 훈련비용을 잘 지불할 수 있을 것인지? 수업이 큰 도움이 될 것인지? 신대원에서 배웠던 것이 있는데 중복되는 것은 아닌지? 평신도 훈련생들이 많은 것 같은데 잘 적응하거나 대화가 통할 수 있을 것인지? 선교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하심이 있는지? 만약 훈련을 받는다면 아내가 응원해 줄 것인지? 아이들 케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여러 생각이 들어왔으며 마음이 흔들렸다. 그 중 아내의 지지가 부족하였기 때문과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무엇인가가 있으셔서 받아야 하는 훈련인가에 대한 명확한 그 어떠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받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원하였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으며,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첫 주차 훈련에는 불참을 하였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일이지만 GPTI 훈련원이 있는 목동까지 가고자 하는 열정과 관심이 상당히 없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 때에는 차라리 혼자 경건생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며 은혜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인위적으로 새로운 누군가와 신앙에 대하여 교제를 하는 것이 유익함이 있을까 하는 불신의 마음이 더 많았기 때문에 훈련불참은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첫 주차를 불참한 후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지 없는지 기대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튜터님에게 연락이 거듭 왔고, 원장님으로부터의 전화까지 걸려왔는데 거절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이 두 분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튜터님과 원장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 간증문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두 분과의 대화의 시작이 GPTI훈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특히 튜터님과의 대화 중 튜터님께서 기도해 왔으며, 더욱 기도하시겠다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원장님께서 나를 설득하신 말씀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강권하신 그 열심에 내 마음이 이 훈련에 하나님의 뜻하신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반응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GPTI훈련을 소개시켜 주신 48기 선배들과의 가벼운 약속이었지만 나의 입술로 그 분들과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약속을 지켜서라도 훈련을 받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이 세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GPTI훈련은 어쩌면 나의 신앙의 전환기가 될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의 뿌리나 자기의 생명의 근원이 어떻게 흘러왔으며 그 역사는 어떠했는지 크나 큰 관심을 가지듯이, GPTI훈련은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셨으며, 앞으로는 어떠한 길로 동행해 나가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자주 고민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요한복음 4장에는 야곱의 우물에 물을 얻으러 갔던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한다. 그 여인의 남편들은 그 여인이 광야와 같은 고통의 삶에서 그토록 목말라서 그 목마름을 해방시켜주는 해결의 우물들로 선택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우물들은 파고 또 파고, 또 다시 새로운 곳을 파서 마셔도 이내 목마름은 더 말라갔고 인생의 황폐함은 더욱 심해졌다. 모든 것이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꼭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샘을 갈망하였던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그 날 그 여인에게 나타나셨으며 그 여인의 일생을 다시 거듭나게 하셨다. 드디어 야곱의 우물가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예언했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좀 거창할 수 있으나 GPTI훈련에 대한 나의 고백은 어쩌면 사마리아 여인과도 같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나는 많은 우물을 팠으며 마셨으나 갈증은 더해만 갔고 영혼과 삶은 황폐함만이 잔재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자의 은총이 나에게도 함께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날도 나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GPTI 야곱의 우물에 가서 간단히 목을 축이겠지 하였지만, 그 날의 GPTI 야곱의 우물은 이제는 두 번 다시 방황하지 않아도 되고 목마르지도 않게 해주시는 예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곳이었으며 회복과 치유의 특별한 나만의 야곱의 우물이었다. GPTI훈련은 나에게 선교사 수료증서를 주는 곳이 아니라 나에게 “ 리 콜 - recall ” 즉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부르신 곳, 내가 하나님의 뜻을 다시 기억해 낸 거룩한 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나게 하신 브엘라헤로이, 나를 다시 그 분의 사명 속으로 소환하신 갈릴리 해변, 탕자를 주품에 돌아오도록 하신 아버지의 품, 다시 회복하시는 여호와삼마,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었음의 여호와이레였다. 끝으로......, 원장님과 김영희튜터님 그리고 48기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이 간증문을 통해서 짧게나마 전해 본다.
-전OO < OO 교회>- 지난번에 말한대로 GMP와 동역하게 되면서 선교 및 선교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 폭을 넓히고자 GPTI 훈련을 시작했었다. 그래서 나는 훈련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시작할 때, GPTI 훈련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고 11월 마지막 주에 마친 교회의 빌립전도훈련에도 참석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고민되는 시기도 있었다. 빌립전도와 GPTI 훈련 시작 시간을 다 참여했는데, 두 훈련을 동시에 참석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기도하는 중에 담임목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GPTI 훈련만 받기로 한 결정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훈련을 받으면서 처음에는 교회의 친한 분들에게 선교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가 필독서를 공부하면서 선교사라는 엄중한 직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생각을 정정했다. 과연 나는 선교사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훈련의 중간이 지나고 있는 지금에도 과연 내가 선교사가 되어가고 있는가는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숙제가 참 힘들다. 자판에 익숙하지 않아 독수리 타법에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상당량의 숙제를 하는 중에 거북목이 되어 가는지 목이 너무 아프고 손발도 저리는 데까지 이르러 스트레칭 시간을 늘렸지만 잘 안되어 시간을 내어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가야할 것 같다. 힘들다는 것을 먼저 쓴 것은, 힘든 이면에는 많은 유익이 있었다는 것을 쓰고자 함이다. 우선 선교와 선교사에 관해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선교사에 관한 그림이 점차 윤곽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독서보고서의 유익을 말하고자 한다. 훈련 이전에는 경건 서적을 읽으면서 묵상할 내용에 밑줄 긋는 수준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다시 읽을 때가 되어야 처음 읽을 때의 생각이 나는 정도이었다. 또 책 내용이 나중에 생각나서 그 부분을 찾으려하면 그 책 전체를 다 뒤져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독서보고서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용 전체를 요약하고 중요한 내용은 마지막 부분에 독후감으로 남겨두면 더욱 깊이 경건 서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찾아야 하는 내용이 있으면, 훨씬 찾기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경건 서적을 읽고자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필독서 내용들이 나중에 선교사가 될 때의 필독서이기도 하지만 현재 나의 상황과 교회의 현 상황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참 많다는 것이다. 참고할 사항이 아주 많아 그때마다 독서보고서의 독후감에 매달아 놓았는데 한 개씩 풀어 사용하고자 한다. 가장 최근의 독서보고서 내용인데, ‘자기중심성’이라는 주제이다. 교회에서 자기중심성을 가진 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고 하지만 자기중심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그것이 사단의 목표라는 것을 인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나의 성향 테스트에서도 나온 대로 잔 다르크형인 INFP형으로 나의 내면을 외향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내면으로 깊이 관찰하는 것이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관찰보고서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숙제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소중한 내면의 관찰을 글로 남겨두는 것도 참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4조의 팀워크가 참 좋은 편이다. 서로 기도하면서 기도 제목이 이루어질 때 서로 기뻐하고 새로운 기도제목도 그렇게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새로운 기도제목을 내어 놓는 4조는 소통이 필요한 소그룹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OO < OO 교회>- 무엇인가 모르지만 떠밀려 오듯이 온 것이 벌써 3개월째! 정말 아무것도 신앙심이 없는 내가 선교사님, 목사님, 선교가 확실한 분, 성경적 지식이 많은 분, 직장 신우회 등에서 열심이신 분들 속에서 아직 내가 붙어있다는 것도 참으로 놀랄 일이다. 처음 소개해 준 교회 집사님의 권유로 3번 이상을 거절하였으나 이후 장로님과 GPTI 원장님까지 권유 하셨고, 막다른 길에 온 것처럼 어떤 힘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잠깐 미쳤었는지 교육 받겠다고 덜컥 승락하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세 분 모두 나의 신앙 년도만 보시고 권하신 것 같다. 분명히 신앙심이 바닥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설마? 그래도 이 정도는 하겠지 하시면서 모두들 내게 권유하신것 같다는 생각인 든다. 지금쯤은 소개해 준 것을 모두 후회하실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시계추처럼 의미없이 왔다 갔다만 했지 기도를 어찌해야 하는지? 성경도 내가 알고 싶은 것만 알고 거의 잘 모르는 내가 이곳에서 억지로 조별 대표기도를 어쩌다 하게 되고, 한 번도 나가지 않던 새벽기도를 나갔었고 , 매주 수요예배는 최대한 빼먹지 않게 되었고, 매일 매일 성경을 읽게 되었다. 이 훈련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생각된다, 아니 사실 아직도 너무 벅차다. 사실 처음에는 집사님이 영적 감동을 받았다는 말에 엄청 기대하였고, 훈련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아 은혜받기 위한 것이라면 기도원 갔어야 된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이 들렸고 이후 훈련 받는 모드로 다시 변경 하였으나 개 버릇 누구 못준다고 했나? 결정적으로 “관계” 문제 발생! 사람을 보지 말라 했지만 또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 먼저 구하라 배웠는데 내 중심적 사고로 먼저 판단! 여지껏 기도하나 못하는 내 신앙심, 내 과거의 삶이 여전하다. 내 연약함이 더 큰데 또 내 잣대로 평가하고 할 말 다하는 상황 발생!! “아직도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간섭하시는 하나님! 실수 한 후 회개하기 보다는 실수 하지 않도록 제게 선한 마음을 허락해 주시고 교육 시간 마다 해보지 않음으로 인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절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김OO < OO 교회>- 벌써 GPTI가 반을 넘어 끝을 향하여 달려간다. 처음 GPTI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선교부에 소속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을 알고 시작할 때 머뭇거리며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고 시작하면서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진실 되게 하자”하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는 웬만해서는 하면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동거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위험한 동거는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일까? 의외로 의견충돌 보다는 서로 돕는 자의 모습을 경험케 하였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인 것을 다시금 경험케 하셨다. 초반 내부의 소동으로 인해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오히려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부부를 폭풍 중에도 잠잠케 하셨고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가정 안에서의 변화의 모습이었다. 초반에 이 훈련을 하게 하신 이유가 혹시 자녀들과의 관계 문제를 해결 하시려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 했다. 그러면서도 작은 불협화음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주 한 주 시간이 흘러갔다. 숙제로 자녀들과 허깅을 하며 축복기도하며.....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자녀들과의 대화 속에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아빠 방으로 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이들과 아빠와의 대화가 길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간혹 불협화음이 들기기는 하지만 횟수와 강도가 줄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한 번도 소그룹을 해보지 않은 남편이 아주 많이 어색하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고 처음엔 내가 남편을 이끄는 듯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이끄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육 3개월을 넘기면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간혹 있지만 끝까지 완주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에게 큰 일 격을 때 마다 주시는 말씀이 있다. 두려워하고 걱정될 때 말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어다 ”(출14:14) 역시 이번에도 나의 걱정보다 하나님이 먼저 앞서주셨다. 앞으로 남은 공동체 훈련과 ORT가 걱정이 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하실 일인 것을 알기에 기대하며 나아간다. 이 훈련으로 우리 자녀들이 아빠가 하나님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며 자신들 또한 하나님을 높이며 주님의 일에 헌신을 할 것을 위해 기도한다.
-정OO < OO 교회>- GPTI(GMTC)는 GBT 사역자로서 언젠가는 받아야 할 훈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GPTI를 받을지 GMTC를 받을지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습니다. 두 훈련이 비슷하지만 또 다른 부분이 있어서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GBT에서의 시간이 10년을 꽉 채우면서 마음에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선교사님도 함께 기도해 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만 하며 몇 달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7월, 저는 한국어 교사 관련 공부에 대한 기도를 하다가 훈련에 대해서도 응답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GPTI를 받으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응답을 받자마자 바로 들어간 홈페이지엔 7월 말까지 마감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 언제 받을지에 대해서도 여쭤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기도했습니다. 50기 훈련을 받아야 할지, 공부와 병행하면 힘들 텐데 졸업 후인 내후년에 받아야 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하나님은 50기를 바로 받으란 응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힘들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스케쥴이니 감당할 힘도 주실 줄 믿고 GBT에 훈련을 받고 싶다 말씀드리고 GPTI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제 생애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말이어서 더욱 바빠진 업무에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 교회의 일정과 학업에 따른 수업, 과제, 토론, 그리고 GPTI 훈련. 처음엔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중반에 다다르면서 점점 과제도 밀리고 밤도 새고 지하철에서는 자고 가끔은 일하다가도 조는 일도 생겼습니다. 바쁜 매일이 계속되고 쉬지 못하니 신경이 점점 예민해졌습니다. 사람들을 대하는 저의 모습도 많이 건조해졌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정전기가 날 것 같았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웃고 넘어갈 일도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불을 끄고 잔 날이 거의 없었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제는 너무 속상해서 아는 동생에게 저의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럴까? 나는 또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스트레스 때문일까? 왜 더 상냥하지 못했을까? 주로 이런 내용의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침에 기도를 충분히 했어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바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들었던 생각, ‘기도해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한 시간 더 기도하기로 했다던 신앙 선배의 말, 뭔가 훈련의 실체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쥴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이것을 알길 원하셨구나. ‘기도’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구나. 머리로는 아는데 오늘도 여전히 겨우 일어나 사무실의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내일 또 다시 시도해 보면 됩니다. 훈련의 반을 쫓기듯 달리며 기도하지 못함을 매일 후회하며 보냈습니다. 이제 다음 훈련의 반은 바쁜 중에도 기도하며 달려 보려고 합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OO < OO 교회>- 9월2일 50기 개강을 며칠 앞두고 나는 GPTI훈련 등록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을 하고 있었다, 앞서 49기로 훈련을 마친 남편의 결코 녹록치 않은 전 과정을 곁에서 목도했기 때문이다. 기질 상 타이트한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점과 독서에는 자신이 없다는 점 매주 보고서를 내야한다는 점 등등 GPTI가 내게 그리 매력적인 훈련은 아니었다. 남편은 내심 나의 오케이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계속 구직 중 이었고 일과 훈련을 병행하기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부담이 늘 자리하고 있었고 남편에겐 마음 주시는 대로 결정하겠다고 하고 기도하면서 동역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사실 남편과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누었던 존파이퍼 목사님의 ‘삶을 허비하지 말라’는 책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었다. 남편이 훈련을 받게 된 것도 그 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나 역시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열심히 달려왔던 길이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였나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을 열심히 살아 온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지만 나의 인생의 일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멘토인 선교사님께서 ‘인생의 십일조 라 생각하고 하나님 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괜찮치 않을까?’ 라는 말씀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하고 훈련을 받겠다고 결정을 했다. 9월 한 달은 긴장해서인지 또 남편의 훈련과정을 보아서인지 힘들다는 생각보다 새로운 앎에 대한 기쁨이 컸던 시기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원장님과 튜터님 조원들과 50기 동기생들- 과의 약간은 어색하지만 같은 뜻을 가진 소중한 분들과의 설레고 기대되는 매주의 만남이 즐거웠다. 약간의 시행착오의 적응기를 지나고 10월이 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길 즈음 하나님께서는 내게 직장을 허락 하셨다 인천에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로. 기도했지만 염려했던(?) 일이 생긴 것이다. 남편은 ‘진정한 훈련이 되겠네’ 하며 의미 있는 웃음을 보냈다. 원장이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있을 수 없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3개월의 훈련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하신 기도제목을 적어본다. 1.직장-어린이집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짐.(내가 투입되어 문제를 수습함) 2.집의 이사- 10월19일 합숙훈련과 이사 날자가 중복되어 염려했는데 집이 나가지 않아 이사 날자가 11월 14일로 변경되어 무사히 합숙을 마침.(중보기도). 3. 이사 날에 연차휴가로 쉴 수 있었음. 4.ORT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연차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음. 이 밖에 언급하지 않은 여러 가지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두 가지 감당하기가 버거운 상태지만 은혜로 훈련과정을 마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하며 내 삶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주님께 맡깁니다. 할렐루야~
- 최OO < OO 교회>- 이제 훈련에 대한 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기선교 출발준비 때문인 듯하다. 매일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놓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하면서, “아, 드디어 선교에 발을 들여 놓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내 생애에 처음 갖는 경험이다. 막상 선교훈련을 받고 있긴 하지만, 선교 현장과는 멀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도 해외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세대이며, 선교현장으로 나가기보다는 물질로서 배후 지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교는 나와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선교는 점점 현실로 다가왔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할 실제적인 문제와 부딪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리고 있다. “하나님, 선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나는 모른다. 정말 어떻게 하다 보니, GPTI에 들어오게 되었고, 마치 무엇에 등을 떠밀린 듯이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이 시작되면서 내가 가장 당황했던 것은 ‘선교’를 내가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전도는 해 보았지만, 선교는 내 뇌리 속에 각인된 적이 없다. 신문사에서 파리 특파원을 하는 동안에도 한국인 2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르치긴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것은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으로 시도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에도 타 민족에 대한 선교라는 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귀국한 후에도 일과 내 교회 문제에만 골몰했을 뿐 역시 선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단지, 선교헌금에만 열심을 내었을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훈련을 시키실까? 훈련이 이제 반환점을 돌아섰다. 그동안 내가 다니는 교회의 ‘시니어제자훈련’까지 소화하느라 GPTI 훈련은 너무 힘들었다. 거기에다 막 새로 리모델 일을 한 여행사 운영까지 끼어들어 일의 선후도 판단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 곳의 훈련에서 밀려드는 과제물에다가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영업팀을 새로 구성하는 문제 등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하는 수 없어 보약을 먹어가며 지금도 훈련에 임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이 전공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이 훈련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내게 글을 쓰는 달란트를 허락해 주셔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텨오고 있다. 다행히 11월 말로 내가 다니는 장충교회 시니어 제자훈련이 끝이 나, 조금 숨통이 트일 듯싶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헉헉 대며 훈련을 뒤따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훈련으로 인해 내게는 그동안 많은 신앙의 전진이 있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성경 말씀에 관한 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 왔으므로, 훈련을 받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단언해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이런 교만을 계속 깨뜨리셨다. 그것은 특히 과제물로 내준 독서를 통해서였다. 나는 관련 신앙서적을 통해 많은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더구나 세상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접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면, 저자의 의도는 물론 행간에 숨겨진 것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읽은 아홉 권의 책 한 권 한 권에서 내가 알고 있지 못하던 토픽을 접하고 그것을 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나의 신앙의 전진에 참으로 큰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안점식 교수가 쓴 ‘세계관, 종교, 문화’는 내가 의식적으로 기피해왔던 문제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물론이려니와 타 종교나 심지어 정치집단의 세계관까지 자세한 설명과 역사적인 배경을 밝히고 있어, 나의 눈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성경적 세계관 속에서의 인간과 인간성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진화론의 문제, 실패한 공산주의 체제, 유교 문제, 이슬람 원리주의 문제를 비롯해 심지어 뉴 에이즈 운동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세상 학문의 지식과 성경 연구가 크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새벽 2시 37분에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을까? 이 책 95페이지에는 지난 10월 17일자로 그 아래 새벽 2시 27분에 받은 느낌을 적어놓은 것이 있다. 거기에는 성경적 해석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눈이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훈련을 통해 좋은 책을 읽도록 하고, 또 이를 요약토록 과제를 내어준 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힘든 훈련 중에서도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 것 같은 일은 또 있었다. 그것은 기대하지 않은 훌륭한 강의 덕이다. 매일 훈련 때마다 두 명의 강사가 우리를 가르쳐오고 있다. 그러나 강의 중에서 피곤한 나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든 것이 있어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두 강사님의 강의를 통해 참 이 훈련을 받기 잘 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있다. 한 강의는 ‘4차 산업혁명과 선교 혁신’(문상철 원장)이라는 강의이고, 또 다른 것은 ‘전문인 선교’(박민부 원장)였다. ‘4차 산업...’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막 논의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선교학으로 끌고 온 그 발상의 신선함 때문이었고, ‘전문인...’은 거의 30년에 걸려 준비해 온 방대한 자료 때문이었다. 특히 ‘4차 산업...’은 과학(기술)과 기독교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에 일격을 가한 것으로서, 실험적 연구를 위해 해외에까지 연구원들이 나가 자료를 모으고, 세계 석학들과 토론을 거쳤다는 점에서 한국 선교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던 부분이 나를 감동케 했다. 또 ‘전문인...’은 강사가 세상의 직업을 가지면서 느꼈던 경험과 그 때부터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교육생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점이다. 교육생인 나의 느낌은 이거야말로 털도 뽑지 않고 산채로 먹는 오리 요리 같았다. 정보가 곧 돈인 세상에서 ‘전문인...’ 강의는 엄청난 가치의 돈을 교육생들에게 그저 준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강의 반대편에는 강의 준비 소홀이 눈에 띄어 많은 안타까움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강의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이 곧 예배라면, 강의 준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듯 해야 함을 망각한 강사가 있었던 것은 큰 유감이다. 앞으로 이런 점을 개선되어야만 GPTI의 지속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최OO < OO 교회>-
훈련에 대하여 처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영역에서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강의가 아주 필요한 강의입니다. 훈련을 통해 은혜가 되는 것은 튜터님들의 섬김과 배려입니다. 먼저 GPTI를 통해 전문인 선교사의 삶을 살고 계신 중에 여러 가지를 코칭하고 훈련에 필요한 영역을 잘 도와 주셔서 훈련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덜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훈련에 잘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각 진행 되는 순서 순서마다 훈련생선교사님들이 담당이 되어 기도로 준비하여 직접 진행하는 것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 한 분 한 분의 헌신적인 순종으로 선교사적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도전이 됩니다. 선교사님들의 삶을 보노라면 그것 자체가 큰 은혜이고 도전이 됩니다. 주제별로 강의 하여 주시는 강사님들의 열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매 주 매 주 한 시간 한 시간 순서마다 감사와 기쁨이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GPTI훈련을 받아 전문인 선교사의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그동안 잘 몰랐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타문화 이해였습니다. 타문화에 선교사로 파송받아 가서 복음만 열심히 전하면 되지 무슨 문화까지 이해하여야 하나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습니다. GPTI훈련을 통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타문화를 이해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 자신도 모르게 자국문화에 대한 우월주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회개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후원금을 받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배우게 되어 감사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진행될 공동체훈련과 단기선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GPTI훈련을 통해 전문인 선교사로의 준비되어 가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열심히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