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O <OO교회>-
내가 강도를 만나니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어 준 GPTI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기회와 지혜를 주었다. 매우 감사하다. 내가 나를 아무 거짓 없이 나의 깊숙한 곳 감정부터 자극하여 하나님과 훈련생들 모두에게 고백하니 너무나 편안했고 좋았다. 고백 후 그 다음 여정들은 매우 진솔한 삶과 행복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강도만난 나의 삶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 GPTI를 만나게 해 주시니 이 또한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임이 확실하다. 이 귀한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GPTI 원장님과 튜터님들, 스탭분들의 수고를 통해 일해 주시니 먼저는 하나님께요, 그 다음은 그분들께 나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이제 이 훈련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터를 마련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경 말씀에 행함보다는 나의 수단과 방법과 계산이 늘 앞서는 삶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먼저 일하신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일마다 잊어버렸습니다. 마르다처럼 내 생각으로 뭔가 하는 일이 먼저였고 바빴습니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강도 만난 삶을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며 먼저 물어보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이 제 안에 사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삶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혀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11월의 찬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나의 자아가 파쇄되어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기도하는 구정회입니다. -국향O<OO교회>-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나에게는 특별한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어떤 아이가 교실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기타로 바꾸어서 치는 나를 보고서 하는 말이 “선생님! 욕심쟁이 !!!” 하고 나가 버린다. 그렇다. 나는 아주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조금씩은 할 줄 아는 것 같다. 골프. 피아노, 기타, 영어,... 모두 전공은 아니지만 밥 먹고 사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듯이 나는 이 GPTI 훈련도 그중 하나로 배우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덜컥” 시작하고 나니,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예전의 나를 생각한 것이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보니, (10권의 책을 미리 받아서 잘 읽긴 했지만) 첫날 수업을 하고 숨이 막혔다. 자신이 없어서 그다음 주는 남편을 설득하여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버렸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튜터님의 전화도 안 받고, 이제 그만 둘 건데 뭐.... 입학금은 헌금했다 치면 되고... “하나님! 이번에는 하나님 뜻이 아니고 하나님 음성도 안 듣고 내 마음대로 신청했나 봐요. 다음에는 꼭 기도하고 응답받고 다시 할게요.” 그런 상태에서 원장님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내 입에서 “하겠습니다” 하고 말해 버렸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와 버린 말이다. 크~~,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난 후 그동안 무거웠던 내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 마음이 지금 중간 지점까지 계속 되어졌다. 하지만 육체는 힘이 들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나서 괴롭다. 지금까지 교회 프로그램을 많이 받아 왔지만, 이번 훈련은 그동안에 구멍 난 곳을 메꾸는 과정같은 느낌이 든다. 주님의 사랑때문에 바울은 옥에 갇히고 매도 맞고 했는데 그것에 비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말씀의 축제인 것이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세계를 품은 기도”이다. 말씀읽기는 노력하지 않아도 잘되는 편이지만 기도는 인색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훈련에서 세품기도가 좋아지고 있다. 한 시간도 거뜬히 할 것 같은 기쁨이 나온다. 지난 주일 내가 양육하는 자매가 결석을 해서 한 시간 동안 세품기도를 가지고 기도를 했다. 너무 뿌듯하다. 내가 어떻게 세계를 품은 기도를 하게 되었는지...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김영O <OO교회>-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렵지 않은 가정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자랐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놀기 위해 새문안교회에 등록하였고, 주일은 그 친구들과 하루종일 즐겁게 노는 시간이었다. 사춘기였던 중학교를 지나고 고등학교 대학교 평탄하게 지냈다.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어울리며 풀었던 시절이 있었다. 1997년 지금의 교회에 등록을 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삶에서는 회사를 경영하며 굴곡이 있었지만, 신앙은 크게 요동침 없이 지냈다. 특히 선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기선교조차도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선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2018년 여름 교구목사님이 제 아내를 통하여 캄보디아 단기선교에 함 께 하자고 제안을 해 주셨다. 나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근데 아내는 관심이 있었던 것 같고, 갑자기 우리 막내가 와서 이제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자기는 엄마 아빠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니, 생각해보자고 하였다. 결국 7가정 (성인 12명 청소년 아동 12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우연히 모인 멤버들이었는데, 찬양, 율동, 사물놀이, 미술 선생까지,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이 참 귀엽다’ 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지,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19년 가을 담임목사님, 해외 선교부장, 장로 5명 모두 7명이 캄보디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에도 나는 전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은 가게 되었다. 담임목사님의 캄보디아 바탐방 신학교에 집중선교를 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을 위한 방문이었다. 동행했던 장로들이 김장로를 이곳에 두고 가자고 그리고 아내를 보내자고, 캄보디아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였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될 때쯤 아내와 나는 캄보디아 선교에 대한 비전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1985년부터 몸 담았던 회사를 정리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규모는 작아도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회사를 정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2020년 지지부진하던 회사 정리가 2021년 들어와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지금은 다 정리가 된 상태이다. 올해 7월 말에 당임목사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캄보디아에 사람이 필요한 것을 알았기에 우리 부부가 캄보디아 관심이 있음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담임목사님께서 그동안 캄보디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계셨다며, 우리 부부 같으면 적격자라고 하시며 저와 아내를 다시 부르셔서 대화 시간을 가졌고,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바로 선교사 훈련 (GPTI) 권하셨다. 접수 마지막 날에 원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면접을 하게 되었고,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이 훈련을 잘 참여하고, 마칠 수 있을 지 걱정이 많았다. 우선 대학 졸업 후에 공부나 독서는 멀리 했고, 공부라면 교회에서 하던 성경공부가 전부였다. 그것도 5개월 정도나 되는 이런 훈련은 받아 본 적이 없기에 막막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비대면 ZOOM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저는 나름 나와 나의 지식에 대하여 교만이 많았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세상 학문에 대하여 이상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 잘 믿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왜 심리학이나 상담이 필요 하나 이런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잘 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교만만 가득했던 것 같다. 신앙생활도 나와 내 가족 중심이었다. 이런 나에게 선교란 정말 생소한 분야였다.벌써 훈련이 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그 훈련시간들이 기다려진다. 처음으로 31명의 선교사님들을 ZOOM에서 만나고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대단한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그분들의 믿음 생활, 선교에 대한 비전을 들으며 도전이 되었다. 특히 내가 속한 1조의 튜터님과 조원들 정말 나에게는 즐거움이었고 복이었다. 지난 주 본부에서 1조 선교사님들을 만나니 더욱 기쁘고 즐거웠다. 사실 지금도 타국에서의 삶이 어떨지 예측하지는 못하겠다. 너무 모든 것을 쉽게 생각했기에 타 문화에서 적응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이제 전체 훈련기간 중 절반이 지났는데, 그동안 강의를 들으며 너무 선교란 것에 대하여 쉽게 생각하였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Life Formation 강의를 통하여 (건강관리, 감정 관리, 스트레스 관리, 기질 테스트 등등) 타문화권에서 부딪치게 될 일들과 감정에 대하여 미리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하게 되었다. 특히 모든 것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시는 것이 더욱 좋았다. 한편에서는 선교학 총론, 세계관과 타종교, 전문인 선교, 선교와 문화, 양화진 특강, 삼위일체 등 선교의 이론적인 것에 대해 배웠다. 깊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앞으로 선교지에서의 삶에 대한 기본기를 튼튼히 해 주는 과정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의들이 모두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강의를 들으며 특히 30주년 축제와 세미나를 통하여 실제로 내가 캄보디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교육 분야와 적정 기술 이런 영역이 어쩌면 내가 참여하게 되는 교육 분야의 일과 연관이 있을 수 있으며, 그중 몇 곳은 캄보디아에서 현지 적용 기간에 꼭 방문하여 노하우도 배우고 그분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속에 죽어 있던 열정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꿈이 없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고 나는 이렇게 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기쁘게 본향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내가 삶을 시작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하나님이 내가 아직도 필요하셔서 일할 것이 있다고 해 주시고 구체적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GPTI가 나에게 꿈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54기 그리고 1조 선교사님들과 평생 교류하며 이곳이든 선교지에서든 서로 삶을 나누며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힘들 것만 같았던 토요일이 또 기다려진다. -김수O <OO교회>-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한 해가 다 가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언니와 난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종소리에 이끌려 집 근처 언덕 위 뾰족한 교회를 찾아갔다. 예쁜 선생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과 맛있는 과자를 한 아름 안겨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그 날 이후부터다. 목소리가 고왔던 언니와 피아노를 잘 쳤던 난 성가대와 반주로 늘 교회에서 주목받는 자매였다. 그 후로 줄곧 난 교회를 열심히 섬겼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소그룹 모임, 구역장으로 참석하며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처럼 항상 바빴고 분주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보다는 사역하기에만 바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비젼과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세상적 염려에 눌려 참 평안이 없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시며 기다려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금씩 조금씩 아름답게 빚어 가셨다. 10년 전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젼을 갖고 입으로 시인하였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나와 남편에게 은혜와 복을 또는 고난가운데 놓아두기도 하셨다. 광야 40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은혜와 축복의 기간이었음은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며 동행하셨음이다. 지금부터 3여년 전부터 우리 가정은 광야의 삶을 걷게 된다. 4면이 벽이었고 세상적으로 더 이상 의지하거나 기댈 곳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바라보지 못하게 막으셨고 결국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하셨다. 그즈음 교회에서 캄보디아로 파송할 선교사로의 제의가 있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을 떠나 나와 남편을 선교지에 보내실 것을 알고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왔다. 남편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기쁜 맘으로 순종하였다. 연약한 나를 귀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심에 감사가 흘러나왔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신 3여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이었구나~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훈련이었구나~ 남편 회사가 정리될 쯤, 교회 해외선교부 장로님으로부터 GPTI 훈련을 소개받았다. 선교나가기 전 꼭 필요한 훈련이라고 하셔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시작하였다. 강의와 QT, 기도, 주간 보고서, 관찰보고서, 독서보고서 등 프로그램이 다채로웠다. ‘하나님 관점에서 본 선교’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내가 그간 혼탁한 세상에서 얼마나 분별없이 나의 관점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나? 돌아보게 되었지만, 이를 QT와 주간보고서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삶 전체에 영적 사고를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 온전히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훈련이었다. 나에게는 영혼육을 다 갈아엎는 힘든 시간이라서 부담스럽고 지쳤지만, 매주 소그룹 빛의 1조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중보함이 큰 힘이 되었다. L&F 에서는 ‘Getting Better ‘(점점 좋아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란 멋진 말이 나를 감동시켰다. 하나님이 지금껏 인도하셨는데 계속 Getting Better의 자세로 따라가자 마음먹으니 예전에 상황과 요동에 흔들리던 내 맘이 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MBTI 검사를 통해선 나에게 특별한 기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보살피며 남을 잘 지원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나의 기질이 선교지에서 아름답고 귀하게 사용되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한 달가량의 훈련 동안 과제와 강의로부터의 부담이 단비와 같이 해소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문인 선교’강의 날이었다. 선교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기쁨으로 찬양하라’ 이고 하나님의 여정에 내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함께 동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열정, 훈련, 학습, 노력 등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일을 맡기실 때는 분명 감당할 만한 능력과 피할 길을 주심을 굳게 믿는다. 그 일을 행할 때 기쁨으로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게 분명하다. 이 강의를 듣고 나니 선교에 대해 무겁던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감정관리’강의에서는 나의 감정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 하셨다. 지금까지는 난 나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특히 부정적 감정에서 그러했다.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내 감정을 사랑하고 잘 다스림으로 건강한 영성을 갖는 것도 중요함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 침묵과 홀로 있음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느라 항상 바쁘고 긴장했던 나에게 매일의 기도와 안식은 하루하루 살아가야 할 밧데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훈련이 중반을 넘어간다. 날마다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GPTI 지체들이 계셔서 그 여정이 가능하다. 공동체 속에서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세심하고 섬세한 손길을 느끼며 오늘도 매 순간 나의 시선과 마음과 생각이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김인O<OO교회>- 시골 교회에서 주일학교에 다니며 예수님을 만났고, 신앙생활의 기쁨과 감사로 살아온 내게 GPTI 훈련을 소개받고 어떤 훈련일까?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일단 처음 시작부터 모두에게 선교사라는 존칭으로 부르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훈련은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 자격에는 아주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과 선교사로 사는 것에 대해 더 알고 공부하고 싶었다. 은혜받은 성도는 주님을 닮아 가는 것.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손과 발로 살아가는 것.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것이 예수님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예수님이 나의 모델이 되어 일반적인 신앙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런데 이 GPTI 훈련을 받으며 가정주부로서 선교사로 산다는 것에 고민하게 되었고, 또한, 내게 축복권이 있으니 가족을 날마다 축복하는 것에 대한 강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 나라가 북한과 중국,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도록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해 왔는데 이제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내가 축복기도 하게 된 것이 큰 변화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에게 축복 기도해주니 아들도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우리 4조 불사조는 유순남 튜터님과 조장이신 김형관 선교사님, 캄보디아 선교를 준비하고 계신 송인숙 선교사님, 장애우들의 선생님이신 전희경 선교사님, 카자흐스탄의 정영문 신미란 선교사님 부부와 선교사로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김인옥 (나) 이렇게 여섯 명이다. 언제나 자상하신 튜터님, 다문화사역에 열심이신 조장님과 예쁘기도 하지만 언제나 씩씩하신 송선교사님, 마음이 여리면서도 아주 예쁜 우리 조의 막내 전 선교사님! 우리는 모두 '선교'라는 우산 속에 우리가 모여 있다. 앗! Zoom으로만 만나게 된 해외 사역자로 계시는 신미란 선교사님을 만난 것도 정말 기쁘다. 예쁜 아내 선교사님을 만나 결혼하여 예수님을 믿고 직장 선교사로 사시는 정영문 선교사님도 우리 조에서 사랑받는 선교사님이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4조는 그 부부가 계신 그 땅으로 선교를 가게 되지 않을가? 기대해보며.... 정말 가고 싶다!!!
-김항O<OO교회>- GPTI에 대해서는 GPTI 튜터로 섬기셨던 나대식선교사님을 통해 알고 있었고, 여러 차례 훈련받을 것을 권유받았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주부를 병행하면서 훈련을 받기란 여의치 않았으므로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내가 퇴사를 한 후 받겠다고 미뤄왔었다. 나선교사님께서 코로나로 인하여 GPTI훈련이 비대면 ZOOM으로 하니 할 수 있다며 다시 권해 주셨지만, 멀티가 잘 안되는 나의 능력으로 회사다니며 과제 내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매주 시골집에 같이 가기를 원하는 남편의 요청을 거절했을 때 삭막해질 집안 분위기 등등을 생각했을 때 선뜻 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잘 해낼 자신은 없었지만, 작년과 올해에 걸친 조카와 오빠의 죽음으로 인한 나의 정신적 아픔이 하나님께 매달려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믿음 줄 하나 묶고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훈련등록을 했다. UPL(미전도종족 중보기도회)의 많은 목사님 선교사님과 주위 믿음의 친구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시작한 첫 수업은 시골로 가는 차 안에서 ZOOM으로 연결하여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이 ZOOM을 끄라고 소리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시작된 첫 수업이후, 둘째 수업 전날 남편이 본인의 한 달 스케줄을 말해주는데 1주만 빼고 3주 동안 토요일에 골프가 잡혀있다고 했다. 할렐루야!^^ 토요일 종일을 꼬박 ZOOM으로 수업하는 GPTI 훈련을 힘든 줄도 모르고 훈련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보냈다. 세계관과 선교에 관련된 여러 강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러 가지 커리큘럼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짧아서 아쉽고 다음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생겼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책 읽고 독후감 제출 과제와 생활 관련 일상과제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몇 개는 제출을 이어갔는데 대상포진 증세와 어깨와 팔의 통증, 입안은 헐고 잠이 쏟아져서 과제 제출표에 나의 스마일 스티커는 구멍이 늘어갔다. 낮에 회사에서는 시간이 없기에 밤을 새워야 제시간에 과제제출이 가능한데 남편은 ‘잠 안 자면 건강 해친다’고 늦게 자면 몹시 걱정을 하는 통에 밤을 샐 수도 없었다. 주말에는 가족 여행, 결혼기념일, 연로하신 친정엄마 방문 여러 가지 집안 행사 참여에 매주 목요일 교회에서 하고 있던 2년 과정의 TEE 성경공부 모임 참석까지....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가운데 닥치는 대로 생활하다 보니 스티커 구멍은 더 늘어나고 염려하는 튜터님과 조원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동행함으로 인해 평안하고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실히 주의 길을 걷는 믿음의 선배, 동료 선교사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열심히 주님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는다. 아침 출근길 말씀 암송을 통해 하루를 믿음 위에 견고히 다지고, 조원들의 사랑의 중보기도 속에서 위로와 안식을 누리는 기쁜 훈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후반부 훈련은 과제의 완성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훈련 이후에 펼쳐질 믿음의 발걸음에 힘이 실려서 힘차게 신나게 주님과 동행하게 되길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23:10) 살뜰히 도우시는 본부의 세심함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김형O<OO교회>- 교회는 다섯 살 때 사탕 주는 이벤트가 있을 때만 띄엄띄엄 다녔다. 사탕 주면 가고 안 주면 안 갔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신 강양숙 선생님의 인도로 매주 다니게 되었다. 일학년 때 같은 반에 선생님의 셋째 딸이 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이 필기하는 동안 교실 뒤쪽에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기도하시던 모습이 기억에서 아련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생님 소식이 궁금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게 언제 이야기냐며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교육청에 전화했다. 그곳에서도 역시 모른다고 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곳을 모두 전화를 해 보았지만 모두 모른다였다. 식상한 아이디어가 바닥이 났을 때 머릿속에 번득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향에서 오래된 교회 순으로 전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였다. 한 통화만 더 하고 포기해야 하려고 전화를 걸어서 전화를 받는 사찰 집사님에게 “혹시 강양숙 권사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전화를 받으시던 분이 “누구십니까?” “선생님께 배웠던 학생입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당신 참 운이 좋군요.” “네에?” “얼마 전까지 강양숙 권사님과 같이 봉사해서 잘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강양숙 권사님 안동 도원교회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 뒤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도원교회 근처에 사시는 권사님을 찾아뵈었다.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집에 장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낡고 오래되어 냉기가 감도는 방에는 조그마한 상에 성경책이 펴져 있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준 권사님께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아내와 절을 했다. “교회는 다녀요?” “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때 왜 교실 뒤편에서 울면서 기도하셨습니까?” “그것을 봤군요.” “네.” 그러자 권사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딸만 셋을 낳았다고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는데 셋째 딸이 심장 판막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수술한 돈이 없어 너무나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그랬군요.” “결국 셋째 딸은 심장 판막증 수술비 2000만 원이 없어서 스무 살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후로도 나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어요. 김해공항에 추락한 사고로 큰딸을 잃고 홀로 남은 손녀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동안 방안에서 울면서 보냈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은퇴 권사라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외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요. 예전과 달리 요즈음은 연금이 많이 나와서 생활비를 뺀 나머지 돈을 선교헌금으로 드리는데 그 돈으로 아프리카에 교회를 몇 개 지었어요.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연금을 선교헌금으로 보낼 겁니다. 참 김 집사는 어떻게 지냈어요?” “부족한 제가 믿음 좋은 처녀 만나서 딸 하나 아들 하나 두었습니다.” “김 집사도 선교를 위해 기도해 보세요.” “선교사는 특별히 택하심을 받은 분들이나 하는 거죠?” “아니 내가 기도할게요.” 올여름 우연히 얻어듣게 된 GPTI 선교사 훈련은 다문화 결혼 이주 여성들을 가르치며 여러 가지 벽에 부딪쳤던 나에게는 가물어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순간 선교를 권하시던 권사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게으른 천성으로 무장된 내가 차를 끌고 GPTI훈련 본부를 찾았다. 훈련이 시작된 이후 여러 가지 고난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제일 먼저 몇몇 교사들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백내장이 심해져서 책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안과에서는 치료를 위해 일주일을 비우라고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의 주변에서 협력해야 할 몇 사람들이 나를 확실하게 연단하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만난 같은 조에 속한 튜터님과 조원들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매주 수요일에 한 번 만나게 되는 조별 모임을 기다리는 나를 바라보며 놀랐다. 어둠을 무시하고 연애할 때 이후 이런 경험은 없었다. GPTI 교육 내용도 좋았다. 평소 막혀있던 의문들을 풀어주는 강의를 들으며 반복해서 잘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땅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던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듣고 뜨거운 피가 솟아오르는 감동도 맛보았다. 아니 30년 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0주년 기념행사 때 참석하신 선배 선교사님들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머리가 숙여졌다. 눈을 감고 나도 나중에 훌륭한 선교사님들과 함께 사역하는 비전도 꿈꾸어 보았다. 아쉬운 면도 있다. 바쁜 일과를 보내는 하루 중에 시간을 내 조용히 내면을 돌아보며 말씀을 보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찬양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 속에 헤매고 있는 것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하나님! GPTI 훈련받는데 평생 성가대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저에게 찬양의 은사까지 덤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문병O <OO교회>-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행당동 성서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하였습니다. 신앙과 믿음 생활의 기간은 길지만 GPTI와 같은 전문인 선교훈련인 특별히 훈련을 받은 경험은 없었습니다. 또한 복음의 전도가 중요함과 양육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지만, 선교, 특히 해외 선교에 대한 저의 생각은 단편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보다 먼저 GPTI 훈련을 받았고 또 전문인 선교사가 된 아내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나게 된 때는 아내는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잠시 귀국하였고 코로나로 인해 다시 필리핀 선교지로 가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만남의 교제를 통해서 아내는 자연스럽게 저에게 선교에 대한 비전과 그리고 GBT. GMF…에 관한 자료와 영상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저는 선교에 대한 일부분 저의 편견을 조금씩 떨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내는 초교파적이고 복음적인 전문인 선교훈련원인 GPTI를 언급하면서 선교훈련에 대해 저에게 안내 및 도전을 주었습니다. 교제를 시작하고 진행 중인 현재의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GPTI 훈련에 관심을 갖고 또 지원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보다는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하나님의 명령인 세계 복음화에 참여해야하는 거룩한 부담감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아내가 선교사이기에 저도 선교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선교 훈련을 받아야겠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GPTI 훈련에 지원하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처음인 선교훈련을 GPTI에서 받게 된 경위와 이유였습니다. 이제 훈련의 반환점을 도는 이 시점에서 지난 훈련 기간을 잠시 돌이켜 봅니다. 저는 GPTI 내에서 저와 같은 훈련생들이 모두 선교사라는 호칭을 갖게 된 것에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전통적인 선교 방식으로 국내외 선교를 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선교사는 해외에서 교회를 세우고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전문인 선교사역도 전통선교와 같이 선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전문인선교사를 양성하는 GPTI 훈련에서는 훈련생 모두가 선교사로 호칭한다고 하여, 다른 훈련생들은 모두 선교사라 호칭하여도 손색이 없으시지만 (실제로 선교사이신 분들도 훈련에 참가하셨고)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교사라 불리워지기에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어 선교사란 호칭에 익숙하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내가 6개월이라는 이 훈련 기간을 정말 잘 버틸 수 있을까? 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약간의 걱정과 갈등이 있었는데 훈련 안내서에 있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수요보다는 당신의 변화에 더욱 관심이 많으시다 “ 이 저에게 다짐의 계기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GPTI 훈련에 지원했고, 훈련프로그램을 제가 할 수 있는 한 잘 따르고 훈련하자는 마음을 가졌지만, 실제 회사 생활과 또 새로 시작하는 결혼생활 등 여러 일 이들로 인해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의도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GPTI 훈련과정 중에 여러 좋은 프로그램 있지만 가장 저에게 좋은 것은 54기 내 어쩌다 5조의 튜터님과 선교사님들과의 신실하고 선한 믿음의 교제.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나누는 것이 저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정말 저는 저의 첫 선교훈련이 GPTI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하나님께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GPTI를 세우시고 지난 30년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선교의 일꾼인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국내외에서 선교 소명을 다하도록 인도하시고, 이 놀라운 사역을 지금까지 끊기지 않고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에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선교단체들이 있지만 GPTI 같이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와 그에 따른 열매를 맺게 하는 선교단체가 얼마나 있을까? 특히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힘들고 고통가운데 있지만 GPTI의 사역이 끊기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발전해 가고 있다는 생각과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제가 받은 많은 은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그동안 많은 것을 보여주셨고 심지어 축복을 해주셨음에도 저는 어려서부터 믿음 생활에 영향인지 몰라도 안일하게 믿음 생활을 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에게 GPTI훈련이라는 시간을 통해 제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닌 믿음의 터닝포인트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제 내 생각과 목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목적에 합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며, 부족하지만 저를 아내와 함께 선교의 영광스런 소명에 참여케 하신다면 순종하길 원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스바냐 3장 17절 ) 이 말씀의 ‘너’가 진정 저이길 소원합니다! -박찬O <OO교회>- 38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전문인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의 일을 하면서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군목으로 계시다가 전역하신 목사님께서 저의 이러한 계획을 들으시고 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GPTI)에서 훈련을 받는 것을 추천해주어서 등록하여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BAM(Business As Mission)로서 전문인 선교사의 길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BAM은 쉽게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을 목적으로 사업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전문인선교사의 기본적 자질을 갖추기 위해 GPTI 훈련을 신청하였습니다. BAM을 위한 계획은 9월부터 투자했던 곳으로부터 배당금 등을 받아 사무실을 준비하고 플랫폼 개발하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훈련 시작을 열흘정도 남겨 놓고 그동안 투자해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손실을 보고 원금을 날리는 등의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투자한 돈의 손실로 갑자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고통으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8월 28일부터 시작하는 GPTI 훈련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훈련을 포기하려고 하였지만, 가족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강권하여 훈련을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GPTI 훈련을 통해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훈련을 시작하면서 과제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과 기도를 더 집중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월에 일이 발생하고 첫 번째 찾아온 위기는 전세 자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전세를 주고 있던 아파트 전세 만기가 다가옴에 따라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 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집을 급매로 내놓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급하게 지급해야 할 돈들을 처리하고 다 정리한 다음 남은 돈을 가지고 그 돈에 맞게 집을 마련하여 새롭게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부동산에 급매로 내 놓았지만 세입자의 협조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한테 집을 보여주는 것에 협조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무거운 짐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매일 집이 팔리기를 온 가족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형님이 저한테 아침 일찍 전화를 해서 얼마 얼마를 내가 해줄 테니 아파트를 팔지 말고. 당초 계획한대로 10월에 그 집으로 이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돈은 경제적 상황을 정리하는데 정확하게 필요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팔지 않고 당초 계획대로 저희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이나 누님들 누구한테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내와 아들 우리 가족은 아파트를 팔기로 하였고 누구한테도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문인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GPTI훈련을 임하는 저의 마음과 GPTI 선교사님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힘든 고난의 기간을 길지 않게 하시고 마음의 평안함과 안정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한 걸음씩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 저와 우리 가족의 모든 상황을 회복시켜 나가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GPTI 훈련 중 말씀과 강의를 듣고, 독서보고서,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 등의 과제를 작성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염려를 잊게 하시면서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GPTI 훈련 과제 중 내가 본 것 또는 겪은 사건에 대해 쓰고 그것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쓰는 관찰보고서가 있습니다. 관찰보고서를 쓰면서 평소에 사소하게 넘어갈 사항들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묵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찰보고서를 통해 나의 삶이 보다 풍성해지고 삶을 나누고 묵상하는 힘이 생긴 것에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10월 21일에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주시는 느낌과 묵상을 관찰보고서를 썼던 것을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1. 내가 본 것 또는 겪은 사건에 대해 (What I See?) 오늘 집을 이사하였다. 군생활 하면서 이사를 수없이 많이 했었기 때문에 이사에 익숙하지만 오늘 이사는 나에게 의미 있는 이사였다. 군에서 제공하는 관사에서 생활을 마지막으로 하고 민간인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하나님이 또 다른 곳으로 언제 이사하게 하실지 알 수 없다.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하시면 감사함으로 또 이사 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 이사를 자주하다 보니 두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연말쯤이 되면 내년에는 어디로 이사를 가느냐고 물어보곤 하였다. 온 가족이 이사에 대해 각자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특별히 오늘 이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이 세상의 삶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신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는 것...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 2. 1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통찰에 대해 (What I learn? / 접목되는 성경구절) 특별히 오늘 이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이 세상의 삶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셨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는 것...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의 삶은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얼마 동안 나그네처럼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이 세상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깊이 깨닫게 되었다. 군에서 인사 발령이 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명령지로 떠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하나님이 명하는 곳,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위 말씀을 보면 인생은 나그네로 이 세상을 얼마 동안 살다가 고향인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게 한다. 3. 내가 적용한 것에 대해 (What I Apply?)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소풍 온 나는 언제가는 소풍을 마치고 본향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남은 짧은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 세상 염려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찾고 얻으려는 헛된 꿈을 버려야겠다. 썩지 않고 영원히 가치 있는 것에 나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며 그러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상과 같은 관찰보고서를 쓰면서 내 삶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나의 안정감을 세상 보이는 것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경제적 손실을 보면서 삶의 안정감이 무너지는 압박감을 가지게 되었었는데 이번 관찰보고서를 쓰면서 소풍 나온 이 세상에서 매우 짧은 삶을 산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 나의 삶의 안정감을 하나님께만 두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참 평안을 주셨다. GPTI 훈련 절반을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훈련 기간에 있을 공동체 훈련, DRT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줄 믿고 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GPTI훈련을 받게 하신 그 뜻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소병O <OO교회>-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며 오늘은 아내와 딸과 함께 처음으로 집에서 김장을 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역사적인 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결혼하여 한 번도 집에서 김장해 본 적이 없다. 시골 어머니가 담은 김치, 처가 집에서 담은 김치를 주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찬 가게에서 늘 사 먹으면 해결되니 별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모두 직장에서 자유로워지고 시간도 있으니 우리가 김장을 직접 해 보자고 아내가 제안했다. 지금은 농촌 군단위농협을 통하여 생산지에서 재배한 재료를 이용하여 쉽게 김장을 할 수 있도록 판매를 한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시골 현지에 가서 절임 배추와 양념까지 준비된 것을 사 가지고 왔다. 그리고 가족 셋이서 둘러앉아 김치를 버무려 김치통에 넣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처음 하는 것이라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이 함께 했다는 것이 기뻤다.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면서 한 가닥씩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맛이 어떠냐고 하면서 웃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념 인증샷도 남겼다.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가족 공동체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누구나 연례적으로 하는 김장이지만 우리 집의 경우는 정말 특별했기 때문이다. GPTI 훈련 주간보고서에는 첫 번째가 영성생활, 두 번째가 가정생활에 대한 보고서를 쓰게 되어있다. 가정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가 출발 되어야 하기에 가정사역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김장을 통하여 울 가정의 사랑하심과 축복하심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고 행복함을 찬양하는 가정되게 하셨으니, 이 축복이 우리에게만 머물지 않고 이웃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늘 힘써야겠다. 또한 가족들에게 허깅하며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을 아이가 다 커버린 지난 수년 동안 하지 못했는데 다시 시작하게 되어 처음엔 많이 어색하고 잘 안 되었지만, 꾸준히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가족을 위한 축복기도 역시 매일 큐티할 때 민수기 말씀 중 제사장의 축복으로 하고 있다. 지난주에 독서보고서를 낸 책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 형상 안에는 신체적, 영적, 정서적, 지적, 사회적 차원들이 모두 포함된다 말하며 자신의 전 존재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마침내 건강한 감정과 건강한 영성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삶에서 혁명이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의 존재 안에 있는 각각의 부분들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고 살아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정생활에서 건강한 감정으로 가족 구성원을 대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으로 회복 되어지기를 구하며 실천해 가야겠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다가 코로나로 임시 철수하게 되었고 설상가상 쿠데타가 일어나 복귀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하루하루가 안일하고 안주해지며 선교사라는 정체성도 희미 해 지는 듯한 위기감이 들어서 ZOOM으로 하는 비대면 강의를 몇 개 신청하여 듣게 되었고 그러던 중 GPTI 전문인선교 훈련과정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필드 중심의 사역 사례 소개 등 전문인 선교사의 현장감 있는 강의를 기대했는데 그동안 받았던 교단, 타 단체 선교 훈련과 중복되는 것들이 많아서 포기할까? 몇 번을 망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새 훈련의 절반을 지나게 되었고 간증문을 쓰면서 돌아다보니 나에게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부문도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가정사역이었다. 주간보고서에서 ‘이 주간의 가정사역 내용은 어떠하였는가’를 계속 체크 하다 보니 어느새 가정을 섬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고 그것은 변화이며 훈련의 열매라고 말하고 싶다. 가정은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매일 같이 가족과 허깅하고 축복기도 하고 시간적 배려를 해야겠다. 내년 이맘때도 가족과 같이 있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며 함께 행복해 할 것이다. -손경O <OO교회>- GPTI에 52기 훈련을 수료한 집사님의 소개로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53기 훈련은 3월부터 시작이었고 나는 5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53기로 도저히 들어올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식도 5월19일로 정해져서 결혼 준비할 시간도 부족해서 할 수 없이 8월에 54기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과정의 갈등,고초 막상 시작은 했지만 관찰보고서 .주간보고서, 그리고 아직도 못 낸 독서보고서의 과제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과 동시에 조편성과 조장선출 과정 중 맡기 싫었으나 조장을 맡게 되었고 조장이 되니 조발표 등등 엠티에 준비해야하는 것 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말 훈련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힘든 나에게 응원을 하듯 개인 MVP상과 조별 2등상을 하사하셨고 힘겹게 과제를 하나씩 낼 때마다 튜터님께서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피드백과 매주 목요일마다 하는 조모임에서 조원들과의 솔직한 심경들의 토로와 조원들의 격려 그리고 매일매일 새벽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한주 한주를 버텨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엄살이다. 같은 2조인 미얀마의 임선교사님은 덥고 습한 날씨에 선풍기 하나로 모기. 파리, 쥐들이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소화불량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고혈압과 저혈압, 협착증, 허리디스크가 있는 건강상 악조건에서도(기도합니다~~ 임선교사님) 프라미스 학교의 교사 일과 하루는 300회의 회의를 진행하면서 GPTI 모든 과제들을 거뜬히 해 내시고, 암송도 최고로 잘 하고, 발표도 퍼펙트하게 하시는 것을 보 면서 나는 정말 반성할 수 밖에 없었다. 해소된 과정과 심적 변화 훈련과정 중에 case study와 토론을 통해 배우는 것은 이미 선교현장을 뛰고 오신 선교사들을 통해 듣는 살아있는 선교를 들을 때 생동감을 느꼈고 21세기 변화된 선교의 패러다임을 알게 되어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김남순 대표의 통쾌하고 시원한 재정관리 강의와 박민부 원장님의 전문인선교와 BAM강의는 나 같은 선교 문외한에게 도전이 되고 차근차근 선교라는 불씨를 가슴에 붙이기에 정말 좋은 강의였던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현재의 상황과 변화된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이 무지한 나를 깨우치게 하시려고 나를 여기에 들어오게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과 동시에 과제에 밀려 매일 매일의 시간을 숙제하듯 보내기에 너무 바빴던 시간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도 무수히 많이 들었다.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그런데 벌써 훈련의 반이 지났고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 시작이 반 이라고 했는데... 독서 보고서를 안 낸게 아니라 못 냈는데... 박민부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받자마자 “원장님 독서보고서 빨리 내도록 할 께요”라고 자진납세를 했다.ㅎㅎㅎ 훈련 전과 현재의 내재적 나의 변화는 많이 달라졌다. 선교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수용하는 한 사람이 되었고, 선교 문맹에서 조금은 벗어난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과 인식의 관점들의 변화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양화진 특강에서 증인...증언...늘 내가 찔리고 괴로워하는 부분을 훈련기간 동안 또다시 찌르셨다. 이 단어들은 나를 눈물 나게 한다. 왜 일까? 왜? 증인으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아픈 마음과 더 무언가를 주를 위해 드리고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아타까운 마음을 주님이 보시면서 탄식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 훈련의 중간간증문을 마치며 훈련생들을 위해 보이지 않게 기도하시며 영적 후원을 해주시는 GPTI를 위해 섬기고 동역하시는 동역회 선교사님들께 깊은 감사 드리며 기도와 세심한 배려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시는 사랑스런 임숙 튜터님과 왠지 모르게 늘 힘이 되는 2조의 소병주. 임정임. 전미희. 편동현. 양정민. 신태우선교사님 들의 기도 덕에 좋은 응답도 받게 하시고 많은 것을 배우도록 이곳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송인O <OO교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꼭 하고 싶다 또는 해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주변의 상황이 나를 GPTI 훈련으로 몰아넣었다. 조금은 심통이 얹혀있던 채로 추가 지원을 했다. 퇴직하기 1년 전쯤 이화스렁학교 관계자이며 여고 선배님으로부터 이화스렁학교에서의 일을 제안을 받았을 때 언제나 다음 진도를 큰 갈등 없이 진행하도록 기획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며, 주저함 전혀 없이 흔쾌히 수락했었다. 만 20세 예수님을 만난 이후 한 번도 다음 진도를 염려하지 않고 40여년을 지내왔다. 궁금해하며 고개를 갸웃하면 즉시 다음 장을 펼쳐 보여주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다. 드디어 2020년 2월 40년의 교직생활에서 퇴임을 했다. 그런데 퇴임 직전부터 코로나19의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계획대로 준비를 해야 하니 나는 우선 1종 대형 면허를 취득했다. 가서 운전할 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여러 방안을 궁리하며 기도했다. 코로나19의 상황은 길어지고, 퇴직 후 1년이 훌쩍 지나고도 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이화스렁학교의 후원 단체인 아시아교육봉사회(VESA)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나의 존재가 VESA에 매우 낯설게 느껴진 듯했다. 물론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회원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에게는 초면이었다. 어쩌면 이 낯선 회원들이 나를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먼저 연배가 높으신 선배님으로부터의 권함이 있었고, 여러분께서 메시지로, 음성 전화로 GPTI 훈련을 종용(?)한 결과 훈련과정에 들어왔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찾아오신 지 벌써 40여년을 넘어섰다. 만20세 때 주님을 만났다. 그 이전 상처를 지닌 나를 나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시고 계시던 주님을... GPTI 훈련 중 Life Formation 강의를 통하여 내 속의 나를 새롭게 만나게 하셨다. 나를 만나시며 위로하셨던 주님께서 나의 상황을 바닥부터 끌어내기 위해 10살 무렵의 나를 그 때의 친구들과 다시 만날 수 있게 상황을 열고 계신다. 예상치 않았던 통로로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연락이 되었다. 4학년 때 짝꿍이었다고 하는 친구와 지금 내가 이사 온 단지에서 가까운 시장 근처에 살던 친구와 통화하며 서울로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신다. 이제 거의 중반에 들어온 훈련과정이 마칠 때쯤은 내가 나를 잘 들어주고, 인정하며, ‘참 좋았더라!’하신 피조물로의 회복을 기대하며, 어릴 적 나를 위로하고, 성품을 화창하게 회복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맡겨야겠다. 지난 Life Formation 강의에서 ‘자기와의 화해’라는 표현이 머릿속에 강력하게 들어왔다. 낮은 자존감에 허덕이는 나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모습을 회복해야 주님께서 다음 진도를 나가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3학년도 내가 담임하고 있던 학급의 회장과 내가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얘기해 준 동료 교사가 있었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지나며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내가 의아해했더니 나중에 교무실에서 궁금증을 풀어놓았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교사이면서도 아이들과 눈맞춤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내 모습에 직면했었다. 대화할 때 상대를 마주 보지 못하던 나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 성인기 등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 자신과의 대면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온 나를 훈련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지난주 여고 선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놀라운 나를 보았다. 내 편이 되어준 나를 만난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절대로 내 편이 아니었다. 누구에겐가 양보하고(아니 밀려나고) 또 나를 구박하고, 나는 무조건 참아야하고, 나는 목소리를 내면 안 되었었다. 선배들 앞에서 나를 내가 지지해 주고 지원해 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이 무척 사랑하시는 송인숙이다.” 앞으로 더 같은 편이 되어 위로도 해주고, 칭찬도 해주며 인정하고 세워가는 진정한 내 편으로 나와의 관계를 지어나가야겠다.
** 시편139편의 내용이 새롭게 마음 깊이 파고든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어떤 상처를 지니고 지냈던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심을 믿으며 주님께서 목마를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여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전도자의 삶을 결단하며 이제부터 훈련을 마치고 맞을 날들은 나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지금까지 구박했던 나를 용서하고, 주님을 예배하는 복된 자리와 기쁨 넘치는 주님과의 동행을 기대하며, 훈련에 나를 이끄신 주님과 그 일에 협력하신 분들께 감사하는 특별한 감사 주일을 맞게 되었다.
-신태O <OO교회>- 우리 가정에 방글라데시 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시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선교에 대해 작은 관심만 있었지 정작 깊이 있게 알아보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은 경험도 없었기에 이 과정이 매우 생소하게 다가왔다. 선교단체는 어떻게 정해야 하며, 언어 공부도 해야 할 것 같고, 선교에 대해서도 배워야 하고, 이슬람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 GMTC와 GPTI 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터서브에서 허입을 위해 수료해야 하는 선교 훈련과정이라고 했다. 그중 우리 여건에 맞는 것일까?’, ‘어른들과 잘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생각과 다르게 지금까지 우리 2조 선교사님들과 아주 즐겁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조모임은 조모임대로 유익하고, 여러 교수님들과 선교사님들의 강의 또한 유익하다. 대부분의 강사분들이 시간이 모자랄 만큼 열의로 수업에 임해주시고 그만큼 알찬 내용을 전해주시니 나 같이 선교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마치 ‘떠먹여주는’ 느낌이 들 정도의 수업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훈련도 유익하고 감사한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훈련을 통해 선교의 개관을 배우고 있다. 비록 하루에 3시간 정도의 강의로 모든 내용을 배우기에는 당연한 한계가 있지만, 선교에 대해 방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중에서도 말씀이 어떻게 선교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다. 앞으로 선교에 대해 더 알아갈 때, 이번 GPTI 훈련이 그 방향을 잡아 줄 길라잡이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조 모임을 통해서는 어디서 쉽게 들을 수 없는 현장 선교사님들의 삶의 이야기, 그 안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실제 삶의 모습, 감정 등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이는 나에게 매우 유익했다. 지금 우리 조에서 서기를 맡아서 모임 기록을 잘 기록해두기 위해 선교사님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이러다 보니 더 큰 은혜가 되는 듯하다. 나보다 최소 15-30년 이상을 살아가신 선배 선교사님들을 만나며 그 인생 여정에 녹아있는 경험들을 믿음 안에서 해석하시고 받아들이시고 이제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두 번의 단발적 모임이 아니라 매주 2회씩 꾸준히 만나며 총 21주를 교제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나 같은 사람은 선배 선교사님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얻고 돌아가게 될 것 같아 미리 감사하게 된다. 훈련을 받으며 생활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주간보고서와 관찰보고서는 단순 과제를 넘어 ’훈련’이 되었음을 발견하고 있다. 매일의 경건의 생활을 기록하는 과정부터 그 주간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고, 잘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확인하게 된다. 비록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해나가는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교제를 하며 양육을 하고 있는 친구와의 관계도 이 보고서를 쓰며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정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 아내와 두 아이들을 위해 매일 축복기도를 하고 의도적으로 더 안아주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은혜이고 유익이다. 관찰보고서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끌어내야’ 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꾸준한 훈련을 하며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안에 호흡하는 것을 알아가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 훈련에 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큰 은혜로 채워주시기를 소망한다. -오성O<OO교회>- 전문인선교 훈련과정이 이제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로 가고 있다. 지난 8월 말 시작된 GPTI 전문인선교 훈련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하나님의 선교 역사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생각하면서 중간간증문을 쓰고자 한다. 올 6월 중순 연변과기대에서의 모든 사역을 실질적으로 마치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우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4월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떤 인생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인지 여러 탐색을 하는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통하여 중국에서의 선교를 꿈꾸게 하셨다. 도무지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이 우리 부부가 중국의 선교현장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연길시에 있는 연변과기대에서 보낸 4년 반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주신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치열하게 경제활동을 하며 보냈던 33년간의 직장생활이 내 일의 첫 번째 장이었다면 중국 연변과기대에서의 4년 반의 시간은 내 일의 두 번째 장이었다. 이제 나는 세 번째 장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기대하면서 전문인선교 훈련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하게 만드셨다는 깨달음이 훈련과정 중에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일은 우리에게 항상 부담과 어떤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생각의 전환을 한다면, 즉 내가 일을 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가장 멋있게 지어진 걸작품,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의 신분이다. 비록 인간의 타락 이후 세속적인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일종의 고난과 같은 숙명이 우리에게 지워졌으나,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원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면, 그리하여 지금 이 땅에서 측량할 수 없는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나에게 일은 어떤 모습이든지 나의 작은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지금 전문인선교 훈련을 받으면서 성경과 필독서 읽으면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고 토요일에 줌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이고 그러기 위해 지금 나는 살아가고 있다. 특히 아내와 함께 훈련을 받으며 같이 공통적인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토론하는 일이 즐겁다. 언제 우리가 그런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대개 주중에 우리는 같이 오전 큐티와 스트레칭 체조를 한 후 각자의 방으로 가서 훈련을 위해서 공부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같이 살고 있는 아들이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재택근무를 많이 하고 있다. 아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우리 가족 셋은 모두 각자의 방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자기 일을 한다. 그럴 때면 우리 집이 무슨 회사의 사무실 같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하고 나와 같이 점심을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 이런 환경과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GPTI 훈련 프로그램은 전문인 선교사로서 영성을 개발하고 선교 신학적 기반을 다지는 교과과정 외에 전인적인 인격 형성을 위한 교과과정이 융합되어 있어 매우 균형 잡힌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TJTA, MBTI와 같은 테스트를 통하여 자신을 점검할 수 있고, 아내와 함께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세계관과 문화 그리고 다른 종교에 대한 공부는 내가 중국 연길에서 경험했던 선교활동을 되돌아보면서 선교에 대한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대학이라는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양육하는 데만 집중을 하여 현지 다른 중국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현지의 관습과 관행에 대하여 너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리하여 나 또한 일종의 우월 의식 가운데 그들을 대하지 않았는지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6월 공식적인 연변과기대 선교활동이 끝난 이후 교회에 안식의 시간을 요청한 가운데 글로벌선교부 담당 목사님의 권고로 GPTI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에 참여한 첫 번째 목적은 훈련을 받으며 선교사로서의 영성 개발과 선교 신학적 지식을 갖추는 가운데 새로운 선교의 비전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뚜렷한 해외 선교의 길을 열어주시지는 않았다. 계속 다른 선교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큐티를 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질 일의 세 번째 장은 무엇인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한다. 어쩌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선교활동의 가능성에 대하여, 나의 경륜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다. 아니면 이제 아내와 함께 노년을 삶을 잘 준비하면서 지역 교회를 섬기며, 우리가 있는 곳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름 순종하며 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한다. GPTI 훈련 과정을 통하여 나에게 또 아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Calling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매주 훈련 때 마다 고민을 한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척박한 조선 땅에 들어와 평생을 헌신하고 순교까지 한 서구 선교사들의 행적과 그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Calling을 생각하면서 나의 Calling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21세기의 선교 환경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재는 그 필요에 따라 각양각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라고 외쳐본다. 다음은 2016년 12월 교회에서 선교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연변과기대 파송이 거의 결정된 시점에 쓴 신앙간증문의 일부이다. 당시에도 선교에 대한 소명을 고민하면서 스스로 긍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번 GPTI훈련 간증문을 마무리한다.
“우리 부부는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그러한 선교의 길이 가시화되기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선교 훈련 및 여러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선교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을 수정하게 되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소명에 용기 있게 나아가는 행동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미약하나마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김진O<OO교회>- 연변 과학기술대학 선교지를 향해 떠났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4년의 사역을 마치고 지금은 GPTI 전문인 선교사 훈련생 54기로 이 자리에 와 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우리의 다음 스탭을 위해 고민하던 차에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GPTI전문인 선교훈련을 안내받게 되었다. 지난 사역지에서 사역을 하며 전문인 선교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가 훈련이 미흡했음을 잘 알기에 흔쾌히 훈련에 임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박민부 원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평신도로 돌아가 ‘다시 초심으로 훈련에 임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첫발을 들이게 되었다. 두꺼운 권장 필독서 한 아름 받아 안고 오면서 내가 이 나이에 왜? 라는~ 마음의 부담감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날로그 세대로, 기계와 나는 서로가 익숙하기를 거부하는 관계라 문서작성을 해가는 과정에 고생문이 뻔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훈련은 씨가 뿌려지는 수고와 인고의 시간을 통해 결실을 얻는 값진 시간임을 알기에 주님께 맡기며 마지막 도전을 해본다. ZOOM을 통해 훈련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 것이 훈련생으로는 편리한 점은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스크린 안에서 교제를 한다는 것이 내 기질상 참 낯설고 어색하였다. 함께 떡을 떼고 모여서 교제하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더욱 귀하고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훈련시간이 지날수록 과제물에 익숙해지며 주간 계획표에 따라 감당을 하게 된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훈련생들이 인도하는 경건의 시간은 인도자를 세워서 말씀을 깊이 묵상한 것을 발표하며 사역자로서 세워지도록 영권을 갖게 하시며 담력을 얻게 하는 시간인 것 같다. 세품기도는 세상을 품고 흩어진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의 용량을 늘리게 한다. 주간간증 발표를 통해 훈련생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함께하셨는지를 공감하는 은혜의 시간이다. 말씀 암송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집중하며 반복하니 이것도 은혜로 잘 되어간다. 그리고 평일에 기도할 때 암송의 말씀이 인용이 되니 기도가 더욱 힘이 생긴다. 많은 과제물 중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를 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영적인 작업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장시간 독서하기와 컴퓨터 작업이 육체적으로 무리가 와서 한의원을 내원하며 치료도 받으며 고생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평소에 우리의 몸을 잘 단련시켜야 하는 이유를 깨달아 알게 한 것도 훈련을 통한 결실이다. 매주 선교학 강의는 선교지에서 경험한 나의 선교와 내가 본 선교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강의하는 이론을 비교하며 학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Life formation 씨리즈 강의는 나를 찾는 시간이다. 주님을 만난 이후 나 자신과의 회복을 이루었으며 성경적으로 보면 참으로 그럴듯한 모양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여전히 잔재하는 거짓 자아들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나를 찾아가며 나를 이해하고 나를 공감하는 건강한 자아를 찾는 것이 건강한 영성과 연계되며 건강한 선교적 삶을 이룬다는 것을 배운다. 필독서” “영적 지도자 만들기”는 ‘나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신앙의 여정표를 보는 것 같았다.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었고 인도하심을 발견하며 내일의 소망도 주님께 의탁하게 되며 든든해진다. “세계관 종교문화” 책은 교회들이 필 독서로 추천하고 권장한다면 많은 크리스챤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하고 복음의 확신과 전도에 대한 열정들이 불 일 듯이 일어날 것 같다. 필독서들을 읽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장문이라 지루할 때도 있지만, 접목되는 강의로 이해를 높이며 강사님들이 모두 진솔하시고 열정적인 강의를 해 주시니 감동이 되었다. 이제 12주차가 된다. 훈련의 과정은 또한 나를 내려놓는 작업이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변화가 있다. 아마도 부부와의 이해와 친밀감,, 아들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아직도 허깅은 어렵지만, 그것도 훈련이 끝날 때면 자연스러운 스킨십으로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이제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은혜를 나누며 친해지는 훈련이 되길 기도한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원장님과 모든 스탭분들, 특별하신 간사님의 항상 밝은 이미지가 격려가 된다. 3조 조학형 튜터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의 마음은 3조를 평안으로 이끄시는 신실하신 분이어서 감사하다. GPTI 남은 훈련시간들도 은혜가운데 완주되길 기도하며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윤진O <OO교회>- 더운 여름에 네비게이션 안내를 받으면서도 물어물어 GPTI 훈련원에 면접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주째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말씀이 떠오릅니다. 면접 후 10권의 책을 들고 오면서 ‘이것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리고 독서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요?’ 근무하면서 “지금도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데 소진이 되어 주님께 매달려 가는 내 모습인데, 오 주여! 감당할 수 있겠는지요?“ 여쭈었던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심으로, 이렇게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이 되었고, 훈련이 가능하였으며 진행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COVID19로 인하여 2020년~2021년 GPTI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감염관리와 방역으로 인하여 토요일은 휴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권유를 받고도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7월31일 QT 나눔에서 눅14:16~18 말씀으로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밭을 사서 소를 사서 장가를 가서 잔치에 못가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푸시고 기다리시는데...’ 그런데 나는 이렇게 토요일 감염관리 방역 때문에 못한다고 삶의 핑계를 대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거절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주님께서 말씀을 다시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셔서 주님께 모든 상황과 여건을 맡기고, 원장님과 대화 할 때 할 말을 입술에 넣어주시기를 기도하고 GPTI 훈련을 받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병원 대표 원장님과 면담을 할 때, 원장님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안 계시면 안 되는데요 내년에 코로나 끝날 것 같지 않을까요? 내년에 하시면 안 될까요? 휴가가 몇 개 있는지요? 남은 휴가가 없으면 무급으로 휴무하셔야 하니까 그러면 급여를 좀 줄여서라도 하시는지요?” 말씀하였습니다. 차분하게 “저는 내일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순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에 더 바쁘면 더 어려울 것 같고 급여는 무급으로 휴가를 사용해야 하면 그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그러면 주중에는 쉬지 말고 토요일만 휴무하면 무급으로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내년 휴가를 당겨서 사용하실 수도 있구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많이 힘드셨는데 선교훈련 통해 좋은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고 하셨습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원장님과 인격적으로 대화가 잘 마무리되게 해주시고 매주 토요일 휴무를 받고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며 휴가 남은 수를 헤아려 보니 훈련을 마치기까지 4개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년 1월에 DRT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년 1월이니 남은 휴가소진을 할 수 있게 되어 DRT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자녀를 위하여 일해 주셨음을 감사드리며 은혜를 함께 나눕니다. 처음 훈련을 ZOOM 교육으로 시작하며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매주 배운 강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하고, 나는 누구인가, 주간 간증문 작성,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 독서보고서 등 매주 주어지는 과제를 맞이하면서 ‘난 정말 할 수 없어’ ‘그런데 하나님께서 근무도 조정해 주시고, 집안 식구들, 담임목사님, 원장님께 모두 말씀드린 상태인데 어쩌지?‘ 어린 아이같이 유아기로 돌아가 걱정 근심하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첫 주 조별 모임을 맞이한 목요일 저녁 ~~~~~ 그동안 많은 모임이 있었지만 정말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소진이 되어 지쳐 있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만 있는데, 튜터님과 처음 만나는 조원들의 동병상련의 나눔과 서로의 기도 그리고 튜터님의 따뜻함과 지지적인 리더십은 우리 모두를 주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지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모임을 마치며 힐링이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고 나는 주님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치유와 회복과 나눔과 중보기도의 뜨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조별 모임은 각자 다 다른 모습인데 주님의 사랑 안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매일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2주 정도 하였으나 어느새 강의가 귀에 들어오고 전문인선교사라는 단어가 어색했는데 처음 각오를 회복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11주를 달려왔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매주 함께 하는 54기 동역자 31분 선교사님들과 우리 빛의 1조 동역자님들이 한마음 한뜻 한 사랑으로 지지해 주어 가능한 것 같습니다. 54기 동역자 선교사님들이 참 애틋하고 정감이 갑니다. 자기소개 시간에 혼자서는 힘드나 둘이 함께, 우리 함께 가면 할 수 있다고 하신 선교사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원장님의 처음 숙제 중 기도의 동역자 3명의 이름을 적으라고 하신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해주시는 멘토 전도사님과 권사님 두 분을 기도 동역자로 부탁을 하고 저는 한 분을 더 적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분들께 한주마다 배운 강의과목과 내용, 경건회, 세품기도회, 읽은 책의 내용, 선교사역에 대한 것 등을 나누며 기도해주셔서 감당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피드백을 나눕니다. 기도 동역자가 매우 중요한 줄 알기에 저 역시 중보기도 부탁을 받으면 끝까지, 마칠 때까지 하고 있지만, 이 기도 동역자들이 매일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울컥하였습니다. ZOOM으로 인한 강의이기에 미얀마와 카쟉스탄의 선교사님들과 지방에 계신 선 교사님들과도 함께 할 수 있고, 저 역시도 ZOOM 교육으로 시작했기에 엄두를 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병원과 집을 벗어나 어떤 모임에 가는 것이 코로나 상황에서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도, ZOOM 교육도 감사할 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코로나가 있든, ZOOM으로 강의를 하든,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그 부름에 반응하는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GPTI 훈련의 한 주 한 주가 은혜이고 감격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고, 나의 인생의 Form을 영적 Life Formation으로 움직여 가게 해주시고, 수용자 중심의 복음전파 사역으로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야 하는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독서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야 하고 밑줄을 그어놓고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육신은 힘이 들지만, 나의 영혼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는 든든한 양식을 공급받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조금 알고 있었던 성경 지식이나 정보, 세계관, 영적 지도자, 문화와 종교, 문화와 인류, 선교사의 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하여 선교에 대한 각 영역들을 새롭게 다시 재정비하고 신앙생활에서 내 생각대로 누르고 참았던 해결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정서와 건강한 영성으로 변화되도록 해주셨습니다. 과목 과목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감동과 감격의 시간으로 ‘결석하면 안 되겠구나’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석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기도하고 다른 날로 옮기거나 선처를 구하거나 포기합니다. “나는 훈련 받는 훈련생이기 때문에 군인이 훈련받는 것처럼 한다.”로 생각을 Reform 합니다. 관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무엇을 보든지 거저 보게 안 되고,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게 하는 한 주 한 주가 되었습니다. 주간보고서를 작성하면서는 매일 성경을 통독하고 QT를 하였지만, 더욱 강화된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지난 주 배운 강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리뷰를 하는 기회가 되어 내 것으로 소화해내고자 애를 써보기도 합니다. 영성과 경건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건강생활, 내적영역, 갈등관리, 선교사님과의 교제 등등 더 구체적이고 깨어있어야 하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가게 됩니다. 진정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는 순간순간들입니다. 세품기도, 중보기도, 가정예배, 가족 허깅.. 이제는 우리 아들이 “엄마 허깅안 해 주어도 사랑하는 것 다 알아요” 하며 함께 웃습니다. 가정예배에서도 우리 가족이 GPTI와 선교사님들과 훈련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는데 소명의 일을 맡겨 주시고 그 소명의 일에 맞는 능력을 주시는 크고 놀라우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멋진 신사이신 원장님과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시는 튜터님들과 열정적으로 섬기시느라 늘 챙겨주고 안내해주시는 간사님들, 귀한 강의로 가르쳐주시는 강사님들.... 지면을 통하여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이옥O <OO교회>- 중학교 3학년 때 불알친구와 말다툼이 결렬한 몸싸움으로 진행되어 친구로 결별한 사건이 있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진학 방향이 달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었다. 원수처럼 헤어졌는데 2년 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서로 인사하다 어디 가는 지 질문하다가 이 친구가 교회를 간다고 하며 다음 주에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종가집 종손이라 유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호기심이 생겨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고3이 되니 교회 동기생들이 대학 입시로 거의 대부분 출석하지 않아 나도 같이 출석하지 않았다.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일요일만 예배드리는 종교인으로 구원, 은혜, 은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모르면서 구원의 확신 없이 28살까지 보냈다. 배우자와 결혼과 관련하여 예수 잘 믿는 여자가 나의 배우자가 되길 바랐기에 하나님에 대해 알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구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은혜받은 그 해에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셨다.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고속철도 계획과 시행에 푹 빠져 있었고, 비젼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49세에 사업을 하였다가 2차례 걸쳐 망하였고 거지 아닌 거지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농사는 소득을 얻지 못하였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각하며 지내던 중 토목을 전공하게 하고 농사를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은혜받았을 때 비전을 떠올리게 하셨고 서로 무관한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엄청난 섭리와 개입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하나님을 알기 위해 공부도 하고, 선교 준비를 위해 선교단체를 알기 위해 수소문 하던 중에 장로교 합동 측 교단에서 진행하는 선교훈련원과 30년 전에 같은 교회에 재직하였던 GBT의 이성우선교사와 차덕근선교사가 훈련 받은 GMF가 생각났다. 두 기관 중 어디서 훈련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GMF로 결정하였다. GMF의 조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알아본 것이 GMTC이다. 간사님께 입학조건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다가 부부는 무조건 부부훈련이라는 것이다. 부부훈련이 아니면 입학 불허라 하는데 와이프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프리카 파송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설명하였지만 방침 사항이라고 불허되었다. 하나님 주신 비전이 맞다면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으며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GPTI가 연결되었고 입학조건부터 간사님께 물어보니 싱글 입학이 가능하다기에 입학 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전문인선교훈련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지원서부터 제출하였다. 지원서 제출 후 원장님 면담이 있었는데, 지원서 전반에 걸쳐 꼼꼼하게 질문하시고 확인하시며 훈련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면담할 때 비즈니스 선교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전문인선교임을 알게 되었다. 훈련안내서의 훈련프로그램을 살펴보니 개인적 관리와 선교관련 과목으로 정리되어있다. 이것들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면 선교학 과정으로 2년은 될 것 같은 판단이 된다. 그리고 독서, 암기, 주간보고 및 관찰보고 등 제출해야 할 것도 많다. 코로나로 비대면으로 시행해야 하는데 잘 진행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막상 시작하니 진행본부와 관련자들의 열정과 2차례 시행한 비대면 훈련 경험이 있어서인지 비대면으로 진행하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지원한 훈련생선교사들과의 교제가 부족한 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처음으로 해본 생애그래프를 통해 모든 지원자의 생애그래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MBTI를 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유형과 너무 나 일치하게 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애그래프와 MBTI를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각종 관리(감정, 자기, 스트레스)를 통해 자기를 철저하게 관리함으로 상처받지 않고 충실히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처음 선교적 이론을 접하는 훈련생들에게 선교, 문화, 제자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선교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강의에 있어서 단지 아쉬운 부분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에 수박 겉핥기식 강의도 발생된다. 사뭇 선교 공부에 기대를 가졌는데 시간 제약 때문에 완전하게 강의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인 것 같다. 강의 하시는 분이나 수강생이나 방대한 자료를 3시간에 설명한다는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필독서나 다른 경로를 통해 더 보충해야 할 것 같다. 중간간증문 제출 무렵 처음으로 한계적으로 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비대면보다는 좋았다. 현장감도 있고, 진행본부의 원장님과 튜터님들과 간사님을 만나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먹을거리도 있고, 조가 다른 동기 훈련생들과 서먹하지만 교제도 하고, 훈련 끝나고 저녁식사도 같이 하였다. 후반기의 대면 강의로 마지막까지 시행되기를 기대하며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조원 훈련생들과 교제가 기대된다. GPTI훈련은 직장근무를 하면서 각 종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참 어려운 과정이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과제를 해야 하기에 늘 피곤하다. 말씀 묵상과 기도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시간 관리가 안 된다. 그래서 조별 기도 제목이 시간관리이다. 중간까지 훈련을 받으며, 워드를 전혀 못 하는 상태에서 각종 제출문을 제출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공학도 출신이라 글쓰기를 싫어하는데 매주 작성하는 것도 곤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강제적으로 뭔가를 암기하는 것인데 성경 말씀 암송 20개이다. 워드, 글쓰기, 암송이라는 큰 암초에 만났다. 독후감도 3개나 밀렸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이제 반환점을 지났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 완주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에서 ‘행백리자반구십리 어만절말로지난야 (行百里者半九十理 於滿節末路之難也)’라는 고사성어를 올려본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에 진(秦) 무왕(武王)의 교만함을 걱정한 신하가 〈시경〉을 인용하여 충고한 데서 비롯된 말로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기고 마지막 끝 길이 어렵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려우므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료할 때까지 주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인내한다 -이은O <OO교회>- 헌신적인 미국 노 목사님 부부로 인해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 2016년 10월 9일 튀니지에서 세례받으며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회개와 나의 죄로 인해 돌아가신 사랑과 견디시는 예수님의 눈물의 중보로 인해 새로 태어나게 된 나는 착해야만 하는 자아와 하나님도 모르는 죄인된 어리석음의 최고봉 자아의 혼돈에서 항상 복잡한 모태 신앙인으로 살았던 혼돈의 땅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참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튀니지에서 - 쉽게 식상해 버리는 감각을 가진 저를 위해 하나님은 딱 견딜만한 시간인 24시간을, 그리고 아름답고 풍성한 시간을 누리고 하나님을 느끼기에 정확한 365일을, 피조물인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누리기에 정확한 4계절을, 또 기도하며 교제하며 걸어가는 공동체를 - 바로 내 의로 똘똘 뭉쳐 살아온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지어주시고 누리게 하신다는 사랑의 관계가 언제나 하나님 곁에 머물기를 갈망하는 깊은 의미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나의 앞길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하나님의 소망이 나를 이끄시고 밀어주심이라는 확신으로 어렵지 않게 그러나 다시 튀니지 하나님의 첫사랑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의 걸음을 움직이는 시간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그다지 놀라운 경험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건 2014년~2019년까지의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온 시간들로 채워진 은혜 때문이였습니다. 튀니지 시절 이런저런 어려운 시간에 우연히 두 번이나 마주치게 되었던 GBT 선교사님은 “전문인선교 훈련이라는게 있어요. 그 훈련을 받고 다시 돌아와서 지금과 같이 살게 된다면 더 큰 하나님 은혜를 누리시게 될 것 같아요” 권면해 주셨다. 5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여지없이 저를 외면하고 못난 저에게 삿대질을 하며 무엇을 가졌는가? 라며 쏘아대는 듯했습니다. 산청에서 30대를 오롯이 보냈기에 대구엔 예배드릴 곳도 믿음의 형제자매도 없었습니다. 아뿔싸! 내가 무슨 결정을 하였던가? 왜 튀니지 그 하나님의 첫사랑이 흐르는 땅을 나의 작은 믿음의 공동체와 주님이 마음을 나누라고 보내주신 가난한 마음들과 위로받는 광야지만 소망이 있던 그 땅을 나는 왜 나왔는가? 어디로 가야 하며 나는 누구인가? 저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는 심정이 정녕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자석에 끌리듯 예배의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5년 전 마음이 깨어진 산청공동체로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기에 부모님 계시고 나고 자란 대구에서 예배의 자리를 찾아야 했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지인으로부터 힘들 때는 교단에 기대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소개를 받은 동신교회!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주신 청년부 배준현 목사님이 소개해주신 튀니지 허영이 선교사님과의 인연, 목사님의 깨어있는 설교와 찬양 시간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잡고 오열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외의 다른 목사님들의 장난 섞이고 현실 비관적인 설교 말씀과 어두운 조명 아래 연출되는 드라마틱 -몽환적인 찬양은 거부감이 들어 영어 예배부에 열심을 품기도 하였습니다. 소박하고 성경 중심의 예배에서 한국의 장엄한 예배 분위기는 왠지 모를 불편함과 속물(?)적인 서로가 의식하는 어색하고 낯선 소외감이 한국 예배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고 배준현 청년부 목사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튀니지에서 만나주신 그 하나님의 온도를 느끼게 하시고 눈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정말이지 동신교회를 찾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어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후 예정보다 1년이나 늦추어진 엄마의 다리 수술과 코로나라는 기막힌 이유는 내가 한국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마치 변증이나 하는 듯했고, 이리저리 걸어도 사막아닌 사막을 걷는 듯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온도가 감각에서 사라질 즈음 마치 저의 기억을 노크라도 하듯 선교사님이 연결해 주신 선교훈련이라는 어색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품어 오던 단어를 들고 찾아간 곳이 GBT 대구 모임 기도회였고 준비된 집사님들과의 교제와 나눔은 언제나 눈물이었고 주님이 허락하신 사랑의 훈련 자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조아라 자매의 한마디 “언니 한국에 적응하지 마세요” 가 마치 성령님의 음성으로 들렸으니 자매의 손을 따라 GMP 선교동원 훈련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당시 GPTI 훈련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요, 교회의 오래된 안면과 많은 인맥으로 이미 검증된 찬양 인도자 부부와 조아라 자매 부부와 신정직 목사님만의 특권처럼 느껴졌습니다. 선교지에서 지내다 왔으나 검증되지 못한 나의 존재는 그야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과도 같이 바라보는 느낌이였고 당황스러웠으나, 여지없는 예배의 눈물 속에 내 입술에는 원망도 어색함도 뛰어넘는 은혜가 있었기에 인간적인 소외감과 대형교회에서 가족들과 많은 지인들 속에 약간은 의기양양(?) 하기까지 한 훈련 지망생들의 한국어로 소통하지만 뭔가 소통의 진심이 닿지 않는듯한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저를 소극적으로 만들기도 했고 GPTI훈련은 멀어져만 가는 듯 했습니다. 새 재봉틀이 필요했습니다. 항상 재봉틀로 일해오고 작업해 오던 터라 대학원까지 공부시킨 딸이 기가 막히게 주눅 들어 지내던 저의 모습이 힘들게 보이셨나 봅니다. 내미신 금액으로 갖고 싶었던 고가의 재봉틀이 중고로 정확하게 나온 것을 신기하며 감사하며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GPTI 훈련 모집이 눈에 들어왔고 비대면으로 하게 되고 훈련 금액이 정확히 아버지가 재봉틀 사라고 주신 금액이었습니다! 눈물이 나고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은실아 너는 나와의 사귐에 필요한 재정은 턱없이 비싸게만 느껴지더니 재봉틀은 덥석 잘도 사는구나. ”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참 순종을 모른 채 울기만 하였구나.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서 하나님께 다가가지는 못 했구나. 하는 애통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미 돈은 재봉틀값으로 써버렸지만 빚을 내서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훈련에 참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영영 튀니지에서 만난 온도를 느끼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신청하면 할인해 주신다는 문구에 덥석 인터뷰까지 하러 서울로 향했고 박민부 원장님과의 면담은 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야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원장님과 처음 뵙는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반가운 냉정함(?)으로 긴 면담이 끝났을 땐 더욱 홀로 결정을 해야 하는 부담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문 앞에까지 와서 주저하는 제 모습에 실망을 하며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GBT 집사님 중 한 분이 느닷없이 문자가 오셨습니다. “선교사님 맛있는 거 사 드세요.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선교사님께 헌금하라 하셨습니다.” 10여년 만에 연락이 닿은 산청에서 뵈었던 김화순 선교사님께서 어떠한 이유로 대구와 갈릴리 마을 사역 중이시라며 꼭 한번 밥을 먹자고 연락이 오셨고, 시간을 정하지 못하던 중이었는데 불쑥 계좌번호를 물어보셨습니다. 본인이 국내에 있으면서 헌금을 받는 게 마음이 쓰여서 흘려보낼 곳을 찾고 있으셨다고 ... 두 분의 헌금은 정확히 훈련비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하나님께 이 훈련을 못 한다고 손 사례를 칠 이유를 못 찾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훈련.. 나만 빼고 모두들 정말이지 준비된 “전문인” 이셨습니다. 나는 무슨 전문인일까... 공허하기 전문, 불안해하기 전문, 우울해하기 전문...예수님 이름 부르기 전문...예배시간에 눈물흘리기 전문..... 이제는 훈련시간 동안이 참 행복합니다. 말씀 암기를 잘못해도 과제가 밀려도 .. 바보가 된 것처럼 만난 적 없는 함께 훈련받는 얼굴들이 모두 반갑기만 합니다. 모세의 역청을 발라 만든 바구니 안에 있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한국에 와서 나의 공동체가 없다는 외로운 마음이 강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인생 공동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이 시간이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듭니다. 훈련이 절반을 넘고 있는 시기에 오늘 아침엔 불쑥 우울함과 만났습니다. 이 훈련이 끝날 때 즈음엔 무언가 선명해져 있을 거라는 기대와 소망이 오늘 아침엔 걱정으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명해진다면 나는 모른 체 할 텐데... 애써 외면하느라 하나님의 음성에서 멀어 질텐데.. 나의 이 고집을 어떻게 꺾는 담?... 또한 한국에 와서 얻게 된 의기소침과 용기없음은 또 어떡하라고... 훈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처음 맞이하는 많은 일들이 (코이카 INNO-LAB컨설팅에 내었던 지원서가 채택되어 순위에 오르진 못했으나 내가 해왔던 작은 공방 일이 국제개발에서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고 남았습니다. NGO 봉사단으로 튀니지에 가서 환경교육 일을 해달라는 특채와 같은 지원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튀니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더 구하게 됩니다). 동신교회 청년부 사랑방 가장을 부탁받아 기도 중입니다, 대구에서 작업실을 내어주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어서 작가로서 1년 동안 활동할 공간도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내 주위에서 일어났고 승리감도 패배감도 느끼며 순종하는 자를 향한 은혜를 소망하는 마음 하나 남았습니다. 나는 언제쯤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했건만... 이미 나의 기도가 닿았을까요? 나를 가장 잘 아시는 그분 한 분만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내 생각 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한분 한분 차 한잔하며 이야기를 듣고 싶고 눈을 마주치며 웃고 싶고 그냥 함께 행복해하고 싶은 여기는 천국일까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만 열심을 다 할 수 있다는 이 시간과 시점이 제 인생에서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성숙한 튜터님과 인생 역경의 스토리가 책으로 한 권 남을 듯한 조원들과 주님께 집중하게 하심이 축복입니다. 남은 여정에 과제를 그만 미루고 빚쟁이에게 쫓기는 듯한 부담감에서 해방되고 싶어 열심히 과제를 따라잡고 다시 평안한 상태로 토요일로 가리라 마음을 잡아 봅니다. 박민부 원장님의 유머와 스텝들의 호흡이 비대면 속에서도 밝게 빛나 비대면 강의로서의 다른 강의와 구별되는 성숙한 경험을 통해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책을 아끼며 읽듯이 훈련을 아끼며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위하여 모든 스텝분들의 은혜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의O<OO교회>- 1970년대 어느 해, 6살 소년에게, 서울 어느 시장에서 여느 아들처럼 아이의 생업에 충실하게 뛰어놀고 있었던 아이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인근 교회에서 말씀과 함께 나눠 주었던 - 동래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던 팥 빵과 곰보 빵이었습니다. 아이는 냉큼 교회로 뛰어가, 30분 앉아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란 분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빵을 받아먹게 되었습니다. 2021년, 이 아이는 중년이 되어 지천명 (知天命)을 지내는 나이에, 다시 에벤에젤의 하나님 앞에 GPTI의 전문인선교사 훈련으로 다시 앉아 있습니다. 중년의 아이는, 시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행하실 그 일들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빵’을 다시금 기다려 봅니다. GPTI의 시작부터 훈련을 포기하거나, 하차해야 할 이유들과 마음의 핑계들을 직면하며, 갈등을 겪었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성장하고 생활해 왔기에, 한국어가 제1 언어가 아니므로 교육과 보고서 등의 문화와 언어적 불편함도 부담이 컸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많은 기독교 기반 훈련에 참가해 왔기에, 내용에 대한 기대 또한 크게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반전의 하나님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 훈련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강권적인 개입보다는 소소한 속삭임으로 큰 가르침들을 주셨고, 내 안에 견고히 서 있던 “선교적 틀”들이 재확립되는 계기를 첫 강의부터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적 삶과 선교적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신앙적/선교적 “틀”이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나에게 “선교”란 - 하나님의 소명을 품고 필요한 곳, 보내시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했고. 그동안 그 기준으로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지각과 신앙과 능력으로 현장을, 현황을, 행할 바를 해석하고 기준을 세우고 달려 나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선교사의 모습이고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에 동참하는 제가, 소명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선교이며, 내 방식 내 목적보다는, 하나님께서 품으시고 의도하시는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 선교이어야 한다는 관점은, 미세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었던 “틀”과는 과정도, 결과도 다를 것이다 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나 (선교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품으신 목적에 동참을 허락하시는 것이라는 것. 선교지로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자가 되어 가는 것이 선교이며.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설계하고 기준화했던 선교적 “틀” (frame)이 잘못됐던 것보다는, 내 좌표가 살짝 틀어져 있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정 북 (true North: 하나님의 목적)에서 멀어질 수 있는 “틀”이 아니었나 반성하며, 내 안에 있던 선교적 “틀” (이래야 할 것이다…)을 뻗을 수 있는 은혜만으로도 훈련의 의미는 충분했다고 본다. 나와 내 주위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한 업을 꿈꾸며 허겁지겁 달려나가는가? 그리고 “내가 실현해 내야 하기에” 얼마나 많이 좌충우돌하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좌절하고 낙심하는가? 전문인 선교사 훈련 – GPTI를 통해서, 나는 “전문 선교사” (missioner specialist) 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선교 전문가, 훈련받은 전문 선교사가 되는 것보다는. 1975년쯤, 소년에게 다가오셔서 속삭여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 그 단순한 (simple)한 마음을 알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거룩한 불만 (Holy discontent)으로 세상을 품고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단순 무식하신 은혜, 사랑으로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전문인 선교사가 되어 가는 듯하다. 6살 아이가 선교사가 되어 가는 것 같이, 그분으로 인해 그분에게로 나아가 본다.
-이지O <OO교회>- 훈련이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깜깜했는데, 벌써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다. 시작하고 보니 많은 분들이 자발적인 마음으로 온 열정을 다해 참여하시는 것을 보고, 선교단체 허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된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나님은 이 훈련을 통해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실 것이고, 내가 무엇을 깨닫기 원하시는 것일까…?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훈련시간에 듣게 되는 강의들은 참 좋은데 과제도 많고 귀찮은 인간관계를 많이 맺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훈련 전 7월부터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GPTI훈련이 이와 맞물리면서 다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주님은 언제나 내가 쓰러진 곳에서 강하게 하시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터치 하시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일대일이나 서너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수다쟁이가 되지만 다수의 사람들과 표면적인 대화를 70% 이상 해야 하기 시작하면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은 선교사에게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난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싫어하니까 선교사로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나의 그런 면까지 이미 알고 있고, 사랑하시고 상관없다 하시며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부르심에 따라 선교지로 나아갈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노력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부분인 것을 이번 훈련을 통해 주님이 인식시켜 주시는 것 같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선교지를 경험해보니 사실 훈련에 있어서 좋은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준비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좋은 협력을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님은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고 그런 주님의 준비된 사람들과의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많은 강의들과 과제가 남았고, 공동체 훈련과 DRT 등 많은 과정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세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소망해본다. -임정O <OO교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 Endure hardship with us like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2 Tim 2:3) 저는 GPTI선교사 훈련은 저의 두 번째로 받게 된 훈련입니다. 다른 곳에서 수년을 훈련받고, 파송을 예상하고 조율해 왔던 모든 절차가 중단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뜻밖의 상황이 왔을 때 당황함과 수치와 실패의 두려움, 거절감, 모욕감 등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소진되는 어려움을 통과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플랜은 지워지고, 분명 주님의 계획을 들어야 할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었던 좌절과 고통의 여정을 통해, 제 안에 연약함 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주님을 신뢰함에 대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하는 광야의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로 한국을 자주 왕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많은 좌절감 가운데 ‘내려놓는’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얀마 현지 상황은 더욱 안 좋아져서, 외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과 낙담이 계속 되었습니다. 또 한국에서 바뀐 법규로 인해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로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GPTI 훈련 참가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님의 큰 위로와 격려와 붙드심으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심을 믿음으로, 잠잠히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았고,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TTN (Transform The Nations)이 세운 신생 미얀마 국제학교에서 사역한 지 2년 차가 되어갑니다. 이전의 특수한 현장사역의 어려움과 돌발 상황 속 섬김이 이곳 미얀마에서 정착하고 적응해 가는 데 도움이 되었고, 새내기 선교사의 실수, 시행착오와 여러 가지 영적 싸움 가운데,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오직 하나님을 대면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시간, 또 주님의 십자가가 실제로 경험되는 시간으로 채워 갔습니다.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던 다양한 선교 현장 경험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격륜 안에서 좀 더 다듬어지고, 나 자신을 성찰하며, 성숙을 향하여, 주님 한 분만을 신뢰하며, 부르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며, 최악의 경우 주 파송 교회가 없더라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해 나아갈 수 있도록 결단케 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2000년 초 미얀마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얻어주고 직장을 잃었거나, 한국에 막 도착한 형제자매를 위한 쉼터공간이자 주중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언어와 재정을 제게 부어 주셔서, 외국인 예배부가 교회에서 자리를 잡기 전에 7년간 섬겼던 시간이 이제는 되돌아보면 평신도 사역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때는 제가 마치 우주선을 타기 위해, 중력과 회전을 견디는 모의 실전연습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이전에 걸치고 누렸던 가치관과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뽑아내고, 주님께만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전도사로 탈북민 대안학교와 교회사역을 할 때는 군대에서 특수부대 요원들이 낙하훈련을 받고 포복훈련을 하는 것처럼, 모든 돌발 상황과 험한 일에 대처하며, 영혼을 사랑하며, 낮아짐의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미얀마로 온 지 몇 개월 안 되어 코로나 여파가 이곳까지 미치게 되었고, 바로 Zoom 수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또 군부의 쿠데타로 매일 9-10시간씩 인터넷을 차단해서, 해외로 뉴스가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로 부족한 교사를 대체해서 한국어 수업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했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못한 나는 교재를 스캔하느라 자정까지 매달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출판사들이 앞다퉈 교사들에게 자료를 많이 개방해 주어서 한결 수월하고 짜임새 있게 한국어 수업도 할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조카가 책과 참고서와 도구들을 비행기로 보내주었습니다. 코로나 시작으로 한차례 미얀마의 대탈출에 이어, 쿠데타로 자국민 철수가 대대적으로 있었고, 거의 모든 국제학교 샘들이 출국하면서 미얀마 Exodus가 한 차례 더 있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이사를 거쳐서 조금 안전한 지역으로 왔지만, 날마다 코로나로 사망자들이 줄을 이었고, 현지인 접촉자 수가 많을수록 감염사례도 많고 연장자일수록 면역저하로 어려움을 겪다 날마다 번갈아 가며 동네 골목에 초상이 났습니다. 젊은 유능한 지점장을 포함해서 교민들도 9분, 선교사님도 2분이 소천하자, 교민사회도 발칵 뒤집히고 일사불란하게 단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용료가 억대가 넘는 의료항공기는 한 번에 환자 3명 정도 수용하는데, 전담 의사가 딸린 Air Ambulance를 동원하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선교사님들도 선교 본부로부터 철수 권고를 받고, 한국 교민들과 학생들이 또 한차례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2013년 PSP 훈련 수료가 인정되지 않아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을 놓고 있던 차에, 꿈도 못 꿨던 PSP 과정이 ZOOM 온라인 교육을 통해 가능케 되었고, 학교사역과 성경 통독사역 함께, 감사하게도 PSP를 마침과 동시에 선교박람회를 통해 GPTI와 연결되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임을 고백합니다. GPTI 원장님과 면담이 잡힌 날, 저희 주변은 정전이고 자체동력으로 전기가 있는 곳에 부탁해서 간 그곳은, 저희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2명을 포함해 온 선교사 가족들이 코로나 환자여서 아래층에 빈집 공간에 자리를 잡고 GPTI 박민부 원장님과 Zoom Meeting을 했습니다. Wifi가 잘 잡힐 거라던 집주인의 말과는 다르게, 1시간 동안 거의 3분마다 줌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지만, 박민부 원장님의 배려로 다음 Meeting을 잡고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죄송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원장님의 배려와 인내심에 놀라워했고, 선교지 상황을 고려해 주시고 선교훈련을 허락해 주셔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훈련교재들도 기적적으로 제게 도착되었습니다. 한 달 걸려 들어올 교재들이 한국에서 미얀마로 들어오시는 학부모님이 기꺼이 일부 가져다 주셨고, 다른 학부모님도 배편이 아니라 비행기 편으로 보내 주셔서 제때에 잘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크고 놀라운 은혜와 격려와 위로였음을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GPTI 훈련 전에는 여러 가지 불평거리와 어려움들이 올라왔지만, 훈련이 시작되고 보니, 함께 부르는 찬양도, 교육도, ‘주님, 제가 선교사입니다!’라는 구호제창도, 표어도, Case- Study, 말씀암송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임숙 튜터님의 개인적인 삶의 간증과 다른 많은 선교사님들의 헌신된 삶의 고백이, 단번에 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습니다. 학교 행사로 한 달간 Video를 편집하고 총감독을 하느라, GPTI 제출 과제물이 한참 밀리게 되어서, 건너뛰려던 책에서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의와 독서보고서를 통해, 나의 취약한 부분, 준비가 덜 된 부분, 공감되며 접목할 부분 등, 아무것도 버릴 게 없었습니다. 다만 한국어로 만 된 책들은 핵심을 잡기가 영어보다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환경이 어려울수록, 주님만 바라볼 때, 말씀 통독과 묵상 나눔이 나를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게 해주었고, 내가 생각하거나 기대했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일하시고 통치하심을 저로 보게 해주셨습니다. 일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GPTI 선교훈련원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실제적인 훈련과 과제도 큰 통찰력을 주었습니다. Case –Study를 통해서도, 말씀 암송을 통해서도, 중보 기도회를 통해서도, 많은 은혜와 감사와 능력을 경험 중입니다.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온 열방이 주께 돌아 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왕으로 ‘너희는 내 백성, 나는 너희 하나님’ 으로 통치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이 미얀마 땅을 적시고 기경되므로, 이 민족이 주께 돌아와 주님을 경배케 하소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과 치유와 회복과 자유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예배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부르신 자를 기쁘시게 하는 좋은 병사로 나를 주님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더 큰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증인으로 섬기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귀한 예비선교사님들을 동일하게 축복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군대로 일어나게 깨워주소서!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33). "This is the covenant I will make with the house of Israel after that time," declares the LORD. "I will put my law in their minds and write it on their hearts.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Jer 31:33) -전미O <OO교회>- 2021년 올해는 저에게 참으로 특별한 한 해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셨기에 많은 기도를 하게 하셨고, 그 은혜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영혼 구원의 열매도 많이 맺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새벽기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로 채워주셨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노라 날마다 결단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 중 가장 큰 것은 내 마음 안에 천국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자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직업이 없는 제가 그렇게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조학형 장로님, 유순남 권사님께서 주1회 인도하시는 ‘어? 성경이 읽어지네!’에 참여하고 있던 어느 날, 줌을 통하여 우연히 박민부 원장님과 김주경 튜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주경 튜터님은 북경에 있을 때 같은 구역으로 함께 예배를 드린 기억이 있었기에 반가웠습니다. 그 날 두 분을 통해 GPTI 전문인 선교 훈련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교사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특히 선교훈련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특별한 분들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유순남 권사님께서 전화로 연락을 주셔서 권유하시기에, 평소 권사님의 성품으로는 무엇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가?’ 해서 거절을 못하고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을 시작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문제와 많은 과제로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또한, 기존에 섬기던 일들도 많은데, 거기에 더하여 훈련까지 병행하려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훈련과정이 진행되어 가면서 매주 줌으로 모이는 소그룹모임도 기다려지고, 매주 강사님들의 강의를 통해 교회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다양한 분야를 다루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T-JTA와 MBTI 검사를 통하여 내 자신을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감정관리, 스트레스관리, 재정강의 등 실제적인 강의와 비즈니스와 선교의 연관성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미루지 않고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컸는데, 잘 하지는 못했지만 감당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훈련과정의 반이 지나가고 있음에 또한 감사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본부에 계신 분들의 섬김, 2조 선교사님들의 기도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히 임숙 튜터님의 헌신적인 섬김은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과제의 중압감으로 훈련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집중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박민부원장님 말씀처럼 훈련을 즐기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열심을 내고, 주님의 인도하심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전희O <OO교회>- 기독교 서적 중에서 많이 알려진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의 제목처럼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나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의 종으로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늘나라에 먼저 간 오빠와 아버지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대로 뜻대로 쓰임 받고 주어진 소명을 다 이루고 떠났다.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되신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듣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40년에 가까운 인생을 썬데이 크리스쳔으로 지내며 주일만 의무적으로 지키는 형식적인 예배와 얕은 믿음 생활에 그치고야 말았다. 5년간의 육아를 마칠 무렵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우리 집 둘째 아들 현우가 태어나면서 다시 고된 육아와 워킹맘으로써 계속되는 직장 일과 집안일들이 겹쳐 잠 못 자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남편의 갑상선 암 수술 그리고,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과 함께 연이어 또 받게 된 두 번째 수술은 아픈 남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GPTI 훈련 초기에 발표하게 된 ‘나는 누구인가?’를 준비하며 인생곡선과 신앙곡선을 그래프로 나타내어 보았는데, 나는 인생곡선이 하향으로 곤두박질 할 때마다 신앙곡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누가 보아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만큼 상향으로 쑥쑥 자라온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릴 적 심한 중이염을 앓았고, 알러지성 피부병으로 자주 아팠고, 여러 가지 이유로 공부도 제대로 못한 나. 그렇지만, 어릴 적에 장래에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자란 나를, 오빠와 동생에 밀려 늘 사랑에 목말라했던 나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해주시고, 그 사랑을.. (나를 위해 일하심을) 나타내셨다. 교육학과로 입학한 나에게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유아특수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의사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치료해주는 유아 특수교사로써 일할 수 있는 평생 직장도 예비해주셨다. 공주대접 받으며 살 줄로만 알았던 결혼생활은 생각했던 만큼 쉽지 않았고, 혼자 큰 줄 알았던 나 그러나, 육아는 더욱 쉽지 않았다. 선교사 훈련을 받기 3~4년쯤 전 작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6개월 하게 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빠르게 공부시키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말씀을 자꾸 하시며, 최선을 다해 나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주시던 목사님, 겁 많고 길 눈 어둡고 순발력 없고 걸림돌이 되는 모든 걸 다 갖추어 못할 것만 같던 운전 연수를 시켜주셨던 집사님, 기도의 은사가 있으신 지(?) 주일 예배에 대표기도로 섬기시던 집사님이 방언 기도만 하시다가 내 옆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시작된 기도를 하셨는데, ‘너와 너의 가족을 들어 쓰리라’는 서너 번의 기도 응답을 집사님의 기도를 통해 직접적으로 들려주셨던 일 등..... 그 당시에는 오직 남편의 건강과 구원이 가장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던 나. 우리 동우아빠가 열심히 팥죽을 쑤어 두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는 꿈을 꾼 것..등등 여러 가지 일들이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간다. 이 무렵 오르프(유아음악교육) 음악 강사 연수 때 우쿨렐레를 배운 적이 있었고, 설거지를 하며 그렇게도 눈물까지 흘리며 찬양하고 십자가를 묵상하고 커피 마시며 성경책만 붙들게 하시더니.. 작년 9월 작은아이 유치원 하원 때 아이 친구의 엄마로부터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로마서 묵상 40일 과정을 밴드에서 한다는 권유를 듣고 가입하던 날, 기타 치며 찬양하는 밴드를 알게 되어 말씀과 찬양으로 매일매일 위로를 얻고 기쁨을 누리고 기타를 배우며 피아노도 치며 찬양한 지 1년이 된 지금. 53기 선교사님이신 직장(학교)의 선배 선생님의 자세한 안내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갈망하던 성경공부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훈련을 앞둔 한 두 달 전에 밴드에서 여름쯤에 밴드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한 분의 집사님께 듀엣신청을 받아 듀엣곡으로 부른 ‘말씀 앞에서’란 찬양의 감동이 없었더라면 결단하지 못 했을텐데..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밴드에서 여러분들이 궁금하신지 물어보신다. 그럼 훈련을 받고 선교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거창한 해외선교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아직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고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내 가족, 친척들, 직장 동료들, 이웃들을 돌보고 섬기며 도와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고,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고, 매일 넘어지고 실수하는 나지만, 겁 없이 도전하고 기쁘게 순종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예쁘게 귀하게 보시고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이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그 목적대로 쓰임 받다가 하나님 앞에 오빠와 친정아버지랑 다시 만날 천국에 가고 싶다. ‘요게벳의 노래’ 찬양을 부를 때면 마음 한 켠이 아프고 목이 메어온다. 남편도 자녀도 모두 내려놓은 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이 자리에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 사람을 사랑하고 의지하려고 했던 것도 결국 모두 헛되고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쉴 틈 없이 주어지는 과제들과 발표 들, 계속 쌓이는 학교 업무와 집안 일들에 지치기도 하고,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옷을 두텁게 끼어 입고 밤이면 학원으로 향하지만 기타 연습은 연습대로 못하고 과제를 하는 틈틈이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친 피아노 실력만 늘어가는 요즘이다. 나의 롤 모델은 찬양사역자 지선 전도사님이다. 실력은 비록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아프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빛을 전해줄 수 있는 따듯한 찬양사역자 전희정 전도사가 되어 우리 동우아빠와 동우, 현우 그리고 주위의 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진솔하게 만나고 나의 사역에 변함없이 늘 동행해주실 하나님께서 약속의 구원을 이뤄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정영O <OO교회>- 먼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길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GPTI 훈련을 당신의 귀한 다른 선교사를 통해서 지금 이렇게 훈련을 받게 해 주시어 너무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훈련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선교사 아내와 살면서 나도 자연스레 반은 선교사가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라는 것이 무엇이고 선교사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GPTI라는 훈련을 알게 해 주시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 딱 맞는 전문인 선교사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걱정되었던 것은 늦은 나이에 선교사인 아내를 만나서 예수 영접하고 현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어찌 보면 초신자에, 성경 지식은 부족하고, 특히 전문인 선교사라는 것은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긴장과 걱정하는 마음으로 GPTI 문을 두드렸습니다.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꼭 합격하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마음을 조아리던 그때였습니다. 내가 전문인선교사로 바로 서려면 이 훈련은 꼭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훈련을 받고 있고 벌써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원장님을 첫 대면 할 때 참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질문 하나하나 할 때마다 대답을 잘 못 하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부족하여 합격 못하면 어쩌나’ 등을 걱정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후에 원장님에게 ‘합격시켜 주시어 고맙다’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이 지면을 빌려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GPTI 훈련이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뒤늦게 예수 믿고 선교사인 아내를 만나 살다 보니 내가 선교사인지 그냥 직장인인지 교회 다니는 성도인지 신분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훈련을 통해서 전문인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전문인 선교사로서 카자흐스탄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선교사인 아내를 어떻게 외조를 해야 하는지,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점검 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전문인 선교사가 되는 것이 맞다’는 답을 가지고는 있었습니다만,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이 훈련을 받으면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믿음의 상태는 어떤지? 영적인 상태는 어떤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제대로 서 있는지? 등의 아주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신앙의 점검을 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매일 묵상하며 기도하며 예배하며 선교가 무엇인지 배우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나에게도 GPTI 54기 라는 한국의 첫 선교사 동기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나에게도 선교훈련 동기들이 생긴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어디든지 ‘나는 GPTI 54기 출신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나에게는 동기들도 있고 든든한 조직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훈련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두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이 훈련을 끝까지 마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매일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을 계속 만나는 시간이 되고 있으며, 선교에 대한 전문 지식들을 배우고 있어서 전문인 선교사로의 자세를 다지고 있는 귀한 시간들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장님, 튜터님, 간사님, 스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분들의 정성과 열정을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시고 있으며 그 영향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고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선교사들을 섬기시는 전문인 선교사임을 인정합니다. 해외에 나가야만 선교사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귀하고 어려운 선교활동을 하시는 동기들을 보면서 저는 도전이 많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있는 멋진 선교사들을 보며 저도 멋진 선교사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길 원합니다. 후배 선교사들 혹은 누군가가 정영문은 멋진 선교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왜 매일 묵상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매일 묵상을 하다 보니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가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는 날들이 되고 있습니다. 관찰보고서를 통해 세상을 하나님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가식적인지, 권위적인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 들던 것도 하나님이라면, 내가 선교사라면 이라는 마음으로 접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영적으로 분별력과 나를 내려놓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 보고서, L/F, 여러 강의 시간은 나의 무식함이 유식함으로 바뀌는 시간이 되고 있으며, 한층 더 성장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구나’ 라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나는 선교사다. 선교사가 되어야지’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였구나 라는 현실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멋진 선교사가 되려면 ‘게으르지 않고 이 훈련을 잘 따라가면 꼭 이루어 주실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하나님의 멋진 선교사가 될 것을 생각하면 너무 흥분됩니다. 이제 전반전이 끝난 것 같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기들이 있어서 너무 좋고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인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또 어떠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실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은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이 훈련을 마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 입니다.’ 라고 복창할 때마다 심장이 터질듯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걱정 또한 커져만 갑니다. 이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믿지 않는 불쌍한 영혼들을 보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터질듯한 심장을 주옵소서. 아무것도 몰라 걱정하는 선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전문인 선교사가 무엇인지 아는 그런 멋진 하나님의 선교사가 되게 해 주옵소서. 날마다 하나님께 이것을 놓고 기도하며 GPTI 54기 훈련과정을 마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미O<OO교회>- 훈련을 시작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전문인 선교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새롭게 선교사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뭉클했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난 이미 선교사이고, 목사이기에 훈련을 굳이 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생각 속에는 이미 교만함과 잘남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거다. 그런데 첫날부터 “나는 전문인 선교사입니다”라고 다짐하는 순간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운 생각과 모습을 보게 하셨고, 선교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게 하셨다. 첫 주 훈련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 그리고 독서보고서는 힘든 숙제가 아니라 내 경건의 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어색했던 54기 동기들과의 만남은 비록 비대면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이제는 만나고 싶고, 그리워하게 되는 동기들이 되었다. 조별로 대면으로 훈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것 같았다. 선교지에 오래 있다 보니 선교의 흐름이나 방향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강팍해지는 내 영적 상태도 점검할 길이 없다. 미지근해진 선교의 열정은 나를 안일하게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하는 게으름으로 나타났다. 이때 GPTI훈련을 만난 것이다. 매주 제출하는 주간보고서는 하루하루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시간이 되었고, 관찰보고서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관찰하려는 시간이 되었고, 독서보고서는 나의 밋밋한 삶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영적 간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훈련에 참여한 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많다. 남편은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직장 내의 모슬렘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거룩한 고민에 빠져있다. 나 또한 대학생들에게 예수 믿는 자임을 밝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통해 어두운 세력에 묶여 있는 그들의 마음을 계속 녹이고 있다. 이슬람권이라 복음을 전하기도 어렵고, 위축되는 건 사실이지만 GPTI 훈련을 통해 복음을 더 담대히 전해야 할 용기가 생겼고, 이런 마음으로 바뀌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 벌써 11주째가 지나갔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구나'가 아니라 ‘시간이 참 빠르다’ 라고 느끼게 되는 건 토요일마다 재밌게 훈련에 참여하게 되고, 기다려지기 때문일 거다. 훈련이 다 끝나고 난 후가 더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그리고 훈련을 마치게 되면 아버지께서 주실 선물도 기대하고 있다. -최상O<OO교회>- 나의 젊은 시절을 전반적으로 반추해보면 비록 가난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지만 그야말로 자존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시절이었다. 이러한 높은 자존감에 걸맞게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그야말로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내와 연애할 때 스스럼없이 ‘나는 KS’라고 말 함으로서 아내를 상당히 당혹하게 하기도 했었다. – 지금도 가끔 아내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자기애, 자신감은 너무나도 형편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환경들을 극복하려는 극복 의지의 반영이기도 했지만... 결혼생활 중에도 나는 아내에게 너무나도 완벽하게 잘해주는 남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음 - 아내가 가끔 불평할 때마다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오직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하였지만 뼛속 깊은 곳에서는 ‘왜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무흠하다는 교만과 자신감으로부터 파생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물론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특히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기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온전한 자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옳습니다’라는 교만함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리고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말씀 붙들고 세상의 경쟁을 이기는 신앙으로, 성공을 위한 신앙으로 은연중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저 껍데기 신앙으로 “보여주는 신앙”, “이만큼만 하면 되는 신앙”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공감대의 확대 ‘94년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소위 제1의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던 음주 교통사고(나 자신과 차만 부서진 사고)이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으며 전격적으로 대내외에 금주를 선언하고 그 이후로 술을 입에 한방울도 대지 않는 생활을 하였으나 아직도 신앙의 성장은 크게 진전되지는 아니한 상태였다. 즉 외면적으로는 나는 술도 입에 대지 않는 ‘신실한 크리스쳔’처럼 보였지만 내면적 신앙의 성숙은 그리 진전이 없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은행에 1년간 자기개발 휴가를 내고 행한 필리핀에서의 MK를 위한 교사 선교사 역할도 수행하였지만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의 입장으로는 만족하였으나, 진정한 선교사로 거듭나기에는 그리고 거룩한 소명으로 순종한 선교사역이 아니라 너무나 준비없는 선교사역의 첫걸음이었다. MK 사역 이후 아내의 고질적인 질병이었던 자궁근종 수술 시 받았던 충격은 제2의 신앙의 전환점을 가져왔으며 여자라는 인격체에 대해 너무나도 부족하고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큰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 사건은 명실상부 내가 진지한 신앙의 자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보다 진지한 신앙의 자세를 위해 노력해 오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나의 삶의 중심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다고 선언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였다고 본다. 죄인입니다 2015년 12월 말 은행을 퇴직하면서 아내는 자신의 선교 비젼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이전 같았으면 ‘무슨 소리야’라고 반응했을 법한 나의 태도가 변화되어 그것도 인생 3막으로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길 같다는 공감대를 확인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아내와의 동심위에 겹쳐지는 것과 같은 제3의 신앙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내는 그 이후 꾸준히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놓지 못하고 월드비젼, 컴패션, 국경없는 의사회 등을 통해 후원함으로 간접적으로 선교의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었으며 이러한 갈망은 마침내 2020년 1월 10박 12일간의 케냐 선교 여행으로 현장에 대한 체험의 기회로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나는 죄인입니다’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부족한 상태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내 속에 부담감으로 자리하던 선교의 사역에 대해 긍정적 이해의 폭을 점점 더 확대하여 간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아내는 올해 2월 32년여 근무하던 교사직을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지난 MK 사역 때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아내와 함께 의견을 나눈 후 교육 훈련과 말씀, 기도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GPTI훈련원을 소개받고 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힘은 들었지만 훈련이 거듭될수록 말씀 읽기, 독서 노트, 일정한 분량의 기도 시간 확보 그리고 강의 시간 등을 통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지속되는 부딪힘을 통해 급기야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내가 죄인임’을 눈물로서 고백하게 되었고 그간 ‘이유는 모르겠으나 미안해’라던 아내에 대해서도 ‘아내가 원하는 바’인데 그것 하나 못 맞추어 간다면 내가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다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진정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질문하며 전적으로 동의하는 은혜로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도 이러한 은혜를 더 깊게 체험함으로 내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은혜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김성O<OO교회>- 가난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라는 마음을 주셔서, 그들에 대한 마음에 품고 아프리카 케냐를 다녀오던 2020년 1월, 코로나는 터졌고, 선교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주님께서 전도와 선교에 대해 나의 작은 마음을 아시고 GPTI를 소개해주셨고, 8월 말 선교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평소 앓고 있던 비염으로 약 때문에 토요일 훈련 도중 졸음을 견디기가 힘들었고, 주중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선교 이야기’ 책을 요약하며 침침한 눈과 서투른 컴퓨터 자판 치기로 어려움이 계속됐다. 책 속에서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동행하며 선교한 이야기들과 예수님께서 먼저 선교하셨다는 선교사역에 관한 내용을 읽으며 크게 감동되었고, 내 마음이 조금씩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 요약과 주간보고서, 관찰보고서를 쓰며 너무 힘들어 못난 자아가 잠시 들고 일어나 불평의 마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매일 읽어야 할 성경과 기도 시간을 확보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남편은 힘들고,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를 건너뛰기가 2~3번 하던 중 성령님께서 남편의 마음도 움직이셔서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함께 할 수 있도록 삶 전체를 변화시켜 주셨다. ‘영적 지도자 만들기’ 책을 읽으며 4번 정도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께서 아무 쓸모 없는 이 못된 죄인을 지금까지 이끄시고, 훈련시키시며, 주님을 위해 준비시키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고, 그 순간 주님을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관 종교문화’, ‘선교와 문화 인류학’,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읽으며 때마다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었고, 선교의 의미, 선교에 필요한 많은 경험적 이론, 영적 갈등을 관리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선교는 예수님의 성육신적인 선교 모델을 본받아 나의 성품을 다스려 주님의 제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선교적 제자도 삶을 살아야 하고,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하신다는 강력한 메시지들을 알려주었다. 특히 책을 쓰신 훌륭하신 저자들이 직접 강의하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과 수고를 통해 선교가 이루어짐을 알게 되었고, 나의 영적 무지함을 일깨워 주었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니 강의를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다.주님께서 한국 땅을 사랑하셔서 수많은 선교사님들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그분들의 순교와 희생과 헌신으로 복음이 전해지게 된 사실에 많은 감동을 받았고, 그분들의 수고로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들어 예수 믿게 된 사실이 감사했고, 나도 어떠한 마음으로 선교를 해야 하는지 각오와 함께 복음의 증인 된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GPTI 원장님, 간사님들, 튜터님들의 섬김과 헌신을 보며 더욱 놀랐고, 그분들은 토요일과 주중의 삶을 거의 포기하시며 기도와 몸으로 섬기시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나는 과연 저분들처럼 남을 위해 섬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고민에 잠기기도 했다. 훈련 도중 전도와 양육의 소망을 품고 기도하던 중, 주님은 영혼들에게 조금씩 가까이 가서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양육할 수 있는 영혼을 붙여 주셔서, 기도로 간구하며 현재 한 영혼을 양육하게 도와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고 예측불허라는 생각이 들었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성경을 가르치며, 열심히 섬기고 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주님께서 54기 모든 훈련생과 섬기는 자들을 잘 지키셔서 낙오자 없이 모두 패스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여전히 성경 말씀도 많이 모르고, 때로는 용기가 없어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가 많은 이 죄인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GPTI를 통해 더 많이 훈련받아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게 하시고,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편동O <OO교회>- 내가 훈련을 받게 된 동기는 조금 특이하다. 선교지에 나가거나, 선교를 희망해서 받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선교지에 14년(만 13년) 동안 있다가 들어온 후에 받게 된 것이다. 2008년 선교지에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나갈 때는 회사의 상황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맡은 그 해외 사업이 빨리 계약되기를 다들 희망했지만, 정말 그렇게 빨리 계약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3월에 내가 첫 출장을 가고 같은 해 5월에 계약되고 6월에 지사장 겸 사업 책임자로 발령을 받아 7월에 현지로 출발했다. 그래서 파송 교회에서 선교 교육을 받을 겨를도 없이 파송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선교단체 가입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선교지 7년차 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면서 현지에서 14년을 있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안식년은 엄두를 못냈다. 중간에 사업을 멈출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안식년 없이 선교지에서 사역하다가, 코로나가 창궐하고 하던 사업도 부득이하게 휴업하게 되었다. 이때 파송 교회에서 잠시라도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안식년과 선교단체 가입을 강권했다. 그래서 올해 7월부터 안식년을 가지게 되었고, 선교단체를 정하여 들어가려는데, 그 선교단체의 조건은 GPTI 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단체의 규칙은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훈련을 신청했지만, 선교지에 처음 나가는 것이면 몰라도, 선교지에서 14년을 생활하고 돌아온 나에게 이 훈련이 정말 필요한가? 매주 토요일 꼬박 교육받아야 하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파송 교회 선교부에서 봉사하는 게 더 나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주님께 이 훈련을 왜 받아야 하는지 여러 번 물었지만 답해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은, ‘훈련을 받아야 단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받는 것이 맞다. 단체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남들이 볼 때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러시나 보다. 순종하자.’ 이었다. 선교지에서 단체가 없으면 정체성을 인정받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도 있었다. 물론 소속단체가 있으면 그 장점은 매우 많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이 갑자기 말씀하셨다. ‘동현아. 나를 믿느냐? 나를 믿으면 그냥 순종해라. 이해되지 않는 것을 따르는 것도 순종이다.’ 이 말씀을 들을 이후에는 다시는 궁금해하지도, 여쭤보지도 않았다. 막상 훈련이 시작되니, 조별 이름을 정하고, 포스터 만들고, 노래를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신입 사원 연수받을 때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내 안에서 내가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둘씩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내가 겪은 일들과 사건들에 대해서 다른 이들이 이미 연구해 놓았거나, 이미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와 나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어떤 사건을 접하면서 내가 이상한 건가? 하고 의심을 삼았던 것이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발전 과정 중에 겪는 상황이었고, 어떤 것은 내가 잘 대처한 것도, 어떤 것은 잘 대처하지 못 했구나 라고 돌이켜본 것도 있었다. 훈련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런 교육을 내가 선교지에 가기 전에 받았더라면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경우마다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선교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에 강의가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GPTI훈련은 그냥 일정표의 프로그램 자체를 보면 들어가야 할 내용이 들어간 듯, 당연한 듯, 평이한 듯 보이나, 실제로 선교지에 갔다 와서 훈련받는 나의 눈에는 큰 나침반처럼 보인다.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쌓여 있다면, 혹은 반대로 일이 너무 없는 경우도 그 사람은 방향을 잃고 급해 보이는, 성과 있어 보이는 일을 먼저 하거나,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다가 시행착오 하기 마련인데, 나침반을 가슴에 가지고 있어 방향을 알고 있다면 많은 일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아니면 잠잠히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용이하다. 그리고 설령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나침반을 가지고 있으면 당황은 하겠지만 바로잡기가 쉬울 것 같다. 훈련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다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생활과 사역과 주님을 따르는 방향성을 명확하게 가르쳐주는 것 같아 이 훈련에 감사하고 있다. -양정O <OO교회>- 1. 훈련받기 전 저는 지난 6월, 13년간 머물렀던 현지 생활을 떠나 안식년으로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살았던 삶에 대해 수많은 기뻤던 추억들, 하나님과 동행했던 기억들은 떠오르지 않았고, 뼛속 깊이 아픈 기억만 가득 안고 탈진과 침체기를 겪으며 어둡고 지쳐 동굴 속에 있었습니다. 일과 사람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점 조정만을 생각했었습니다. 마침 막내의 고3 졸업식을 마치고 대학 입시가 끝나 온 가족이 함께 한국에서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탈진과 침체기, 몸도 마음도 아프고 지쳐서 실은 그저 아무것도 없이 13년 만에 쉬고 싶은 생각밖엔 없었습니다. 파송 교회 목사님과 선교단체 대표님의 권유로 훈련에 대해 더 미룰 수 없어 순종했지만 마음은 수동적이었습니다. 남편만 훈련에 참가하라고 할까도 많이 고민하였으나 원장님께서 기왕이면 남편이 받을 때 함께 받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셔서 참여했습니다. 그러니 훈련 시작부터 마음을 열지 못했고 여러 활동이 낯설고 동기부여가 부족했습니다. 훈련 초기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라는 구호가 가장 하기 싫은 말이었고 제겐 트라우마와 같았습니다. 2. 훈련을 받으면서 처음엔 단순히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남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 훈련의 장점이었습니다. 현지에서는 항상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한국에 오니 자녀들도 대학생이 되어 주말이나 보고 남편도 평일엔 일과 공부로 바빠져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한국 생활이 더 낯설고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점차 훈련 중 강의, 과제, Case Study 등을 통해 콩나물 시루에 물 붓듯이 채워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튜터님의 섬김과 함께 중보해 주시는 조원 분들은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강의나 Case Study를 하며 선교지에서의 경험들이 때로는 괴롭게 떠오르기도 했지만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고 다시 주님과 함께 포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튜터님을 처음 만난 날, 삶을 나누시며 감사 일기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10월 중순 갑자기 제 마음에 점차 저도 알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위로부터 제 안에 서서히 채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 우물처럼 다 채워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히 제 안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훈련을 중간쯤 이어온 현재, 남편이 제 모습이 많이 밝아졌다고 말하곤 합니다. 훈련 덕분에 영적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기 때문이며 중보하는 분들을 곁에 보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때에 제게 안식을 명령하시고 중요한 경계를 넘어가는 시기에 이 훈련을 제게 허락하셨는지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 만들기’ 라는 책과 강의는 제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훈련 전 낭떠러지에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 길은 끊어진 게 아니었으며 주님과 함께 걷는 이어진 또 다른 길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경계선 과정’을 겪고 있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다 모르지만 이끄심에 대해 기대감이 있습니다. 더 풍성한 삶, 더 열매맺는 삶으로 남은 생애를 드릴 수 있기를 더 성숙해진 자아와 마주칠 수 있기를 연습합니다.
저의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홍영O <OO교회>- 2020년 2월 17일 출근하여, 일하고 있는데 외국 여행 다녀온 분이 직장을 방문하셔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를 묻는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코로나 확진자도 아닌 단순 외국 여행자와 접촉했다고 집에 가서 자가 격리를 하라는 말에 쫓겨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그 분도 나도 코로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평소에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내가 더욱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족의 의아해함을 못 본 척하고 명퇴를 했다. 명퇴를 하고 매일 하나님 앞에 앉아 있었다. 직장 생활에 쫓기어 하나님 가까이 앉아 있지를 못했었던 것들이 후회되어 매일 하나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번은 믿음없는 가정에 태어난 내가 불쌍했고,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자와 똑같이 살아온 나를 엄마로 둔 나의 자녀들이 불쌍해서 뒹굴고 울었다. 그 일이 지난 이틀 후 중국에서 같이 근무하던 GPTI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2년 전 선교와 신학교 진학 관련 전화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을 기억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교사님과 통화를 하던 중 선교사님이 GPTI 훈련에 대해 소개해 주시면서 훈련을 받아보겠냐고 하셨다. 겁 없이, 정말 겁 없이 “네”라고 대답을 했다. 선교의 ‘선’ 자도 모르는 내가 호기심 반,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 반으로 ‘네“라고 하였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 지푸라기는 나의 ’로프‘ 였다. 폭설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잡고 가야 살 수 있는 나의 인생의 ’로프‘ 였다. 처음 훈련비 문제부터 모든 일에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GPTI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훈련을 시작하면서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생들은 나와는 너무나 다른 분들이었다. 나처럼 내 문제로 헤매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열방에 대한 비젼을 품으시고 미전도 종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감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신 훌륭한 분들이었다. 이런 훌륭한 분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또 교재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들어도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금방 잊어버리고, ‘아니고, 이 한심아.’ 하고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개시켜 주신 선교사님 생각도 나고 이곳에서 해결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버티기로 했다. 특히, 튜터님과 조원분들이 너무 따뜻했다. 언니, 오빠들 같았다. 눈이 불편하다고 기도 요청을 했더니 루테인을 보내주시고, 농사를 지었다고 고구마를 보내주시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데 잘한다고 극찬을 해주시고, 고민을 늘어놓은 글을 읽고 전화로 챙겨주시는 분들을 어디서 또 만나겠는가? 함께 교제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버티어 보기로 했다. 모르는 것은 여쭤봐야지 하면서 버티기로 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나의 시간들은 선교훈련 중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경건의 시간을 갖고, 말씀을 암송하고, 책을 읽고, 주간보고서와 관찰보고서를 작성하며,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 일상과 말씀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임재를 발견하고, 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말씀을 나의 삶 에 적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 주간보고서와 관찰 보고서를 쓸 때는 왜 이렇게 쓰는 것이 많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도리어 훈련이 끝나면 스스로 주간 보고서와 독서보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보고서 양식(이름도 정했다. ‘주간 삶 돌보기’로)을 만들어 인쇄소에 맡기려고 작정할 만큼 보고서는 나의 정서와 영성에 도움이 되었다. 훈련 중에 많은 Life Formation 강의를 듣는데 모두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상처와 감정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왜 이런 치유가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고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어려운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지도 알게 되었다. 많은 강의를 통해서 선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생겼고, 기독교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사실은 아직 정확하게 완전하게 이해가 된 것은 아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나의 무식함과 다른 선교사님의 학식과 믿음에 대해 감탄하면서 훈련이 끝나면 교재들을 다시 읽어보고, 말씀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리라 생각을 다잡아본다. 훈련의 중간에 도달한 지금, GPTI를 소개해주신 선교사님의 말씀처럼 훈련으로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하다. 보잘 것도 없고, 영성도 바닥인 나를 무엇에 사용하실지 궁금해졌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을 인도해주시리라 믿기에 소망이 생겼다. 훈련의 절반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이 절반도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우리 튜터님과 조원님들이 이끌어주셔서 완주하게 하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훈련받기를 너무 잘했음을, 이 훈련이 나의 ‘인생 로프’ 임을 분명히 증명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과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이곳에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