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선교에 관심있는 성도들 가운데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가 는
선교사’만이 아니라,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여 러 형태로 선교사들을 돕거나, 선교사로 가도록
동원 하거나 후원하거나 하여 ‘보내는 선교사’로서 활동할
것을 교육받아 그런 말을 이제 자주 듣곤 한다. 나는 이
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먼저 ‘보내는 선교사’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보 내는 선교사’라는 말이 신앙이 초보인 사람에게는 가지 는 못해도
‘보내는 선교사’로서 잘하면 거룩한 선교사 의 반열에도 오르고, 선교에도 동참할 수 있고 하여 선 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 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가지는 못해도 있는 곳에서
열 심히 섬기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보내는 선교사’라는 언어에
현혹되어 ‘보내는 선교사’라고 착각하며
실상은 선교하지도 않 고, 선교적으로 살지도
않으면서도, 선교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가는 선교사’는 목사선교
사의 몫이고, ‘보내는 선교사’는 평신도의
몫이라고 생 각하며 그냥 ‘보내는 선교사’에 만족하며
안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이 주는 긍정적, 부정적 부분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이 말 이 되는지 부터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선교사’라는 말 은 원래 '(어디로 가도록) 보냄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이 다. 다시 말해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다. 언어적으로 표 현하면
‘보내는 선교사’는 ‘보내는 가는 사람’ 이라는 의미가 된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교사는 본질적으로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사람 이다. 이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잘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들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본질적으로 선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보냄 받아 온 존재들이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에 열정이 있고, 선교에 헌신하여 ‘가는 선교사’로 헌신하여 섬길 수 있을 것 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터와 삶 속에서 선교 적 삶을 살아, 일터선교사로, 삶의 선교사로 살아 가 는 분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냄 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선교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로 구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 한다. 그것보다는 선교적 삶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 같 다. 가든 안 가든 선교적인 삶을 사느냐 아니냐가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간 선교사도 가서 선교적 삶을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가지 않았더라도 여기서, 이곳에 서
선교적으로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어쩌면 ‘보내는 선교사’라는 함정에
빠질까 우려된다. 그래서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보다 선교적 삶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보냄 받은 선교적 존재들인 것이며, 어떤 이는
가서, 어떤 이는
이곳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귀한 선교적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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